한국일보

[전문가 에세이] 참과 거짓

2024-01-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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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으며 2023년을 보내주었다. 2024년 첫 달에 무얼 쓸까 생각하다가 ‘진실과 거짓’이란 화두가 떠올랐다.

지금 세상은 가짜와 거짓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소셜미디어의 오용과 인공지능의 눈부신 발달이 참과 거짓의 구별을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진짜에 대한 관심이 높고, 더불어 내가 정말 누구인가란 자기감(Sense of Self)과 자기 정체성에 대해 깊은 의문에 빠져있다. 사회문화적으로 가장 핵심 요소로 알려진 진짜에 대한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껴지는 세상이다. 메리암 웹스터 영어사전이 2023년 화제의 단어로 진짜, 진정성이란 의미의 Authenticity를 선택한 이유다.

정신과는 자아(Ego)와 자기(Self)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자아는 자신이 의식할 수 있는 마음 영역이고, 자기는 의식상태는 물론 자신도 알 수 없는 무의식 속의 마음까지 합친 자신 전체를 뜻한다. 자아는 보통 칭찬, 인정처럼 좋은 면과 긍정적인 면을 주로 찾아가지만 자기는 좋은 것 뿐 아니라 폭력, 욕망 등 자신의 어두운 면도 함께 포함한다. 그래서 인간은 선과 악의 양면성이 항상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어 인생살이 중 심리적 갈등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자기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해 발생하는 갈등의 해결이 참 자아를 찾는 길이라 했다. 한편 융은 삼라만상이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궁극적으로 하나의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에 개인의 의식 넘어 전체 우주와의 연결됨을 깨닫는 것이 참 자아를 찾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현대 심리학자 매슬러는 욕구실현을 통해 자기 안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더 나은 자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진짜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한다.

불교는 세상에 참나는 없고, 참나를 발견한 사람도 없다고 가르친다. 또한 무얼 안다는 것은 허상을 보는 것이며 나와 남의 구별 없이 한 몸이 되는 게 참 나가 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불교와 달리 다른 종교들은 정직과 신뢰를 참나의 핵심으로 본다. 심리학은 건강한 생각, 느낌, 행위가 한 군데에 모인 것이 진짜 나이고, 뇌과학은 뇌신경 전달물질들의 모든 반응들이 뭉친 덩어리가 자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논리이다.

종교, 철학 등 여러 학문들도 무엇이 참이고 가짜인가에 대한 논쟁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는 진행형이다. 나 개인적으로 참나는 없는 게 아니라 자기의 다양한 측면들을 융합하여 하나로 만든 자기전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실이 뚜렷하지 않으면 심리적 혼란이 찾아온다. 진정성이야말로 바다 물결에 흔들리는 배의 중심을 잡아주는 돛대와 같다. 진정성은 또한 자존감 유지와 부닥친 상황을 극복하는 능력, 그리고 의미있는 삶의 추구를 위한 건강한 심리적 기능을 이루는 토대도 된다.

진정성이 이처럼 필요하고 중요한 것인데 사람들은 왜 진정스럽지 못한가. 첫째는 자기의 진정성이 사회의 기대와 판단에 미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고, 둘째는 자신이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선택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회적 변화를 따르도록 영향을 주지 못할 거란 절망감이다. 정신의료 현장에서 일하며 자신이 누구고, 무엇이 자신의 삶인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 중 경계성 인격장애가 가장 많으나 강박증 환자들도 꽤 있다. 그들은 항상 무언가를 체크, 또 체크하고, 세균에 감염될까 두렵고 의심스러워 하루에도 수십번 손 씻고, 수시로 집안 청소하고, 물건이 제 자리에 없으면 불길한 일이 일어날까 의심하여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의식(ritual)을 행하듯 정리 정돈을 열심히 한다.

진정한 자아가 강조하는 시대에 자기감과 정체성 문제로 의심하고 고통 받으며 사는 그들을 어떻게 도와줄까? 알고리즘처럼 잘 정리된 시원스런 답은 없다. 경계성 인격장애, 강박증 모두 약물치료와 더불어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본성, 즉 본질인 참나를 발견해서 정체성 혼란과 의심의 늪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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