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하 20도에도 살아남는 ‘독종’ 노로바이러스 기승

2024-01-16 (화) 권대익 의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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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식중독 주범'인 노로바이러스는 영하 20도에서도 살아남는‘독종’이다. 그런데 구토·설사 등을 일으키는 노로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최근 두 달 새 5배가량 급증했다. 지난 7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등 표본 감시 기관 206곳을 통해 집계한 노로바이러스 감염증 신고 환자 수는 지난해 마지막 주(12월 24~30일) 268명이다. 11월 5~11일(49명)과 비교하면 본격적인 겨울철 들어 두 달 새 5배가량 증가한 셈이다.

◇구토·설사·복통·발열 증상… 영·유아 많이 걸려

노로바이러스는 11월 중순까지만 해도 50명대에 머물렀지만, 지난해 12월 10~16일 200명을 넘더니 계속해서 증가해 뚜렷한 유행 양상을 보였다.


특히 환자 10명 중 7명은 영·유아였다. 전체 감염 환자 가운에 영·유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46주 차(11월 12~18일)만 해도 30%에 머물렀지만, 50주 차(12월 10~16일)에는 68.2%까지 올랐다. 이후 다행히 비중이 작아졌지만 지난해 마지막 주에도 영·유아 비중은 47.4%였다.

이 밖에 로타바이러스·장관아데노바이러스·클로스트리디움 퍼프린젠스 등도 겨울철에 식중독을 일으킨다.

노로바이러스는 1986년 미국 오하이오주 노워크 지역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집단 식중독 환자들의 대변에서 처음 확인됐다. ‘노워크 바이러스’로 불리다가 2002년 노로바이러스로 바뀌었다. 이 식중독을 미국에선 ‘겨울철 토하는 병(winter vomiting bug)’ ‘장(腸) 독감(intestinal flu)’ 등으로 부른다.

노로바이러스는 27~40nm(나노미터=10억 분의 1m) 크기로, 60도에서 30분간 가열해도 감염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영하 20도에서도 죽지 않고 냉동ㆍ냉장 상태에서 감염력을 수년간 유지한다.

노로바이러스는 단 10개의 입자로도 쉽게 감염될 정도로 전염성이 높은 데다 감염자 구토물이나 분변 1g당 1억 개 정도의 노로바이러스가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위·장에 염증을 일으키고 24시간 잠복기를 거친 뒤 설사ㆍ구토ㆍ복통 등이 1~3일 발생한다. 회복 후에도 3일~2주 정도 전염력이 유지된다.

최재기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노로바이러스 식중독은 대부분 치료하지 않아도 저절로 낫는다”며 “치료제가 없어 수분을 공급해 탈수를 막는 보존적 치료(정맥 주사)를 하고, 스포츠·이온 음료 등으로 부족한 수분을 보충하면 된다”고 했다.


노로바이러스는 오염된 지하수·생굴 같은 어패류를 통해 감염된다. 감염된 사람이 사용한 물건을 만지거나 환자가 이용한 화장실을 같이 이용해도 옮을 수 있다.

노로바이러스 식중독을 예방하려면 음식을 85도 넘게 1분 이상 가열해 먹어야 한다. 그래야만 노로바이러스가 죽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철 굴은 생으로 먹기보다 익혀서 먹어야 한다.

굴을 생으로 먹으려면 3% 소금물에 10분간 담갔다 씻거나, 무를 갈아 5분 정도 담가두고 여러 번 씻으면 이물질 제거에 도움이 된다. 또한 레몬즙이 섞인 물이나 식초물에 담갔다 꺼내면 굴 비린내를 줄일 수 있다.

지정선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겨울철에 노로바이러스 식중독이 많은 이유는 기온이 낮은 겨울에는 어패류나 해산물이 상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익히지 않고 많이 먹기 때문”이라며 “겨울철 식중독을 예방하려면 손 씻기를 생활화하고 음식은 되도록 익혀 먹어야 한다”고 했다.

노로바이러스는 항바이러스제가 없어 예방이 최선이기에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해야 한다. 외출 후, 음식 조리 전, 공중 화장실 사용 후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 노로바이러스는 표면 부착력이 강해 세정제로 30초 이상 손가락ㆍ손등ㆍ손끝 등을 깨끗이 씻는 게 중요하다.

물은 반드시 끓여 마셔야 한다. 전염성이 강하기에 노로바이러스 식중독 증상이 있다면 오염된 옷·이불 등을 살균ㆍ세탁하고 감염자가 음식 조리나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가정용 염소 소독제(유효 염소 농도 4% 기준)’는 200배 희석하거나(조리기구 등 소독용) 40배 희석(환자 오염물 소독용)해 사용하면 된다.

◇로타·장관 아데노·클로스트리디움 바이러스도 장염 유발

‘가성 콜레라’로 불리는 로타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심한 구토와 설사를 일으켜 탈수가 심하고 전염성도 강하다. 주로 고열ㆍ구토로 시작해 2~3일 뒤에는 심한 설사를 한다. 로타바이러스 장염은 어린이의 95%가 5세가 되기까지 한 번 이상 걸릴 정도로 흔하다.

로타바이러스는 대부분 사람 간 접촉을 통해 대변-구강 경로로 전파되지만, 생존력이 아주 강해 오염된 음식이나 물, 장난감, 가구 등으로도 전염될 수 있다.

특별한 치료제가 없어 일단 감염되면 수액을 보충해 탈수를 막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로타바이러스는 백신이 개발돼 예방접종하면 막을 수 있고 감염돼도 쉽게 회복된다. 생후 2개월이 넘은 어린이에게 접종이 권장된다.

클로스트리디움 퍼프린젠스 식중독은 국ㆍ고기찜 등을 대량으로 조리한 뒤 실온에 방치했을 때 서서히 식는 과정에서 살아남은 ‘퍼프린젠스 아포(spore)’가 깨어나 증식하면서 생길 수 있다. 클로스트리디움 퍼프린젠스 식중독 원인 식품은 돼지고기 등 육류 음식이 가장 많고, 도시락 등 복합 조리 식품, 곡류, 채소류 순이었다.

클로스트리디움 퍼프린젠스 식중독은 식사 후 잠복기(6~24시간)를 거친 뒤 묽은 설사나 복통 등 가벼운 장염 증상을 일으킨다. 이를 예방하려면 육류 등의 식품은 75도 이상에서 충분히 가열해 섭취하고, 남은 음식은 냉장ㆍ냉동 보관하고, 75도 이상에서 재가열한 뒤 먹어야 한다.

<권대익 의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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