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1년에 개봉된 빌 머레이 주연의 코미디 영화 ‘스트라입스’(Stripes)를 보면 불법이민자들이 “우리의 피를 중독시킨다”는 트럼의 거듭된 주장이 틀렸음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머레이는 신병 기초훈련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 버둥대는 오합지졸 병사들에게 막말 세례를 퍼붓는다. “우리는 유별난 인간 집단이다. 와투시족도 아니고 스파르타인도 아니다. 우리는 대문자 A로 시작되는 아메리카인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가? 그건 너희 선조들이 세계 각국에서 쫓겨난 찌질이라는 뜻이다. 너희는 형편없는 폐물이다. 초라한 패배자이자 쓸모없는 잡종이다!”
사실 우리는 핏줄 중독을 운운할만한 단일민족이 아니다. 미국인들의 뿌리는 세계 구석구석에 닿아있다. 당신의 선조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왔다 해도 당신은 17세기 유럽의 하층민으로 구성된 보트 피플의 후손이다. 요즘의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선조들도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고국을 등진 사람들이다.
미국을 ‘예외적’ 국가라 부르는 이유는 혈연과 지연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라는 이념의 바탕위에 세워진 인류 역사상 최초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스파르타인을 포함해) 누구든 미국인이 될 수 있다. 혼합인종이라는 유산은 우리를 구별되게 만든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말대로 “당신이 원한다면 프랑스에서 생활할 수는 있어도 프랑스인이 될 수는 없다.” “독일이나 터키, 혹은 일본에 가서 살 수는 있어도 독일인이나 터키인, 일본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세계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건 미국으로 건너와 생활할 수 있고, 미국인이 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조금씩 거세지는 미국 내 민족주의 정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 민족주의는 대체로 민족성(ethnicity)에 기반을 둔다. 그러나 미국의 민족주의는 미국인이라는 아이디어의 우월성이 바탕을 이룬다. 유럽의 민족주의가 본질적으로 배타적인데 비해 미국의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포용적이다. 합법적으로 미국에 건너와 우리의 헌법과 건국이념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신념적 민족주의(creedal nationalism)는 좌파와 우파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일부 좌파 인사들은 미국을 형편없는 인종주의 국가로 매도한다. 반면 ‘민족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우익 인사들은 미국의 대의정치에 혈연과 지연에 바탕을 둔 유럽 스타일의 민족주의를 덧칠하려 든다. 이같은 시도는 미국의 건국이념을 훼손한다. 독립선언문은 모든 “미국인” 혹은 “미국 시민”이 아닌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말한다. 우리는 간혹 이같은 원칙을 어기지만 ‘미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안에서 하나로 섞인 이민자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미국인으로 거듭난다.
다행히 대다수 미국인은 아직도 이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 지난해 6월에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절대다수인 68%가 이민이 미국에 유익하다고 답했다. (2002년 조사에서 같은 의견을 보인 응답자는 52%였다.) 반면 이민이 미국에 해롭다는 응답은 27%에 그쳤다.
남부 국경의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오고 싶어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밀입국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에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닌지, 범죄자는 아닌지 제대로 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국경을 넘어와 망명을 신청한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들에게 난민 심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국내에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초국적 마약 카르텔이 국경의 허점을 악용해 미국에 치사율이 높은 펜타닐을 대량으로 살포하는 것이 문제다. 일자리를 찾아 몰려드는 ‘경제 이민자’들이 난민제도를 악용해 진짜 난민들을 밀어내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이같은 국경의 혼란은 이민시스템 개혁을 위한 초당적 합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합법 이민자들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미국에는 870만 개의 일자리가 일손을 기다리고 있다. 토박이 근로자들로는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다. 인구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 인구는 부족한 노동인력을 대체할 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한다. 지금은 이민자들이 유일하게 인구감소를 막아주고 있다. 인구센서스국은 2065년까지 미국 인구 성장의 88%를 이민자들이 담당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민자들은 독이기는 커녕 미국의 혈관에 수혈된 ‘생명의 피’다. 트럼프 일가도 같은 범주에 포함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독일과 스코틀랜드계 이민가정의 후손이다. (그의 조부는 1885년 16세의 독일인 이발사로 미국에 들어왔고, 그의 생모는 스코틀랜드가 처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가사일을 하며 성장했다.) 트럼프는 이바나 트럼프와 전 부인 멜라니아 사이에 독일-스코틀랜드-체코계의 피가 섞인 자녀를 두었다. 쿠슈너 쪽의 손자들은 폴란드-유대계 혈통을 지녔다. 에릭과 라라 트럼프 사이에서 태어난 손자들 역시 슬로바크, 영국, 독일, 스위스계 독일인 및 네덜란드계의 피가 한데 섞인 혼합 혈통이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 트럼프도 단일 혈통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미국이 지닌 위대함의 근원이다. 레이건은 “우리가 세계를 이끄는 이유는 지구의 구석구석에서 국민과 힘을 끌어온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기회의 나라로 밀려든 새로운 이민 물결 덕분에 우리는 영원히 젊은 나라, 에너지와 새로운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샘솟는 나라, 강력한 경쟁력을 앞세워 세계를 다음번 전선으로 이끄는 주도국이 되었다”고 역설했다.
그렇다. 우리는 국경을 확실히 지켜야 한다. 그러나 혈통의 순수성을 염려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를 예외적으로 만든 요인들을 포기한 채 그저 또 다른 하나의 국가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지 못한다.
마크 시쎈은 워싱턴포스트의 해외와 국내 정책문제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대통령의 수석 연설문 작성자였으며, 현재 폭스 뉴스 기고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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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A. 시쎈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