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돌기둥 수놓은 눈꽃 송이…서석대 설경은 겨울 수묵화

2024-01-05 (금) 광주=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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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린만큼 보이는 풍경 - 광주 무등산 눈꽃 산행

광주 서구 덕흥동에서 출발하는 1187번 버스는 서에서 동으로 시내를 가로질러 무등산 북측 산자락 원효사까지 운행한다. 시가지를 벗어나면 버스는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넘어 산허리로 연결된 도로를 따라 하염없이 깊은 골짜기로 승객을 실어 나른다.‘1187’은 무등산 정상의 높이이고, 버스가 지나는 산중 도로는‘무등로’다. 광주의 무등산 사랑이 집약된 상징적인 노선이다. 광주 사람에게 무등산에 대해 물으면 십중팔구는‘어머니의 품 같은 산’이라 대답한다. 시내 어디서나 잘 보여 늘 바라보는 그리움의 대상이고, 마음속 아픔까지 어루만지는 품 넓은 산이다.

■순하고 부드러운, 그러나 만만찮은 산

겉보기에 무등산은 순하고 부드럽다. 아래서 보면 정상 능선이 식탁보를 덮어 놓은 것처럼 둥그스름해 등산이 크게 힘들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해발 900m 능선까지 오르는 길이 결코 만만치 않다. 부드러운 흙으로 덮인 육산 같지만 실제 등산로는 대부분 너덜겅으로 다져져 악산에 가깝다.


산 정상에 서설이 내린 지난 1일 원효사를 거쳐 무등산에 올랐다. 해발 약 400m 지점에서 출발하고, 국립공원 관리용 임도를 따라 걷는 길이니 무등산 등산로 중 비교적 순탄한 코스다. 원효사는 이름처럼 신라시대에 원효대사가 처음 건립했다는 말이 전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지금의 전각은 그 이후에 새로 지었다.

눈이 내리면 고도에 따른 기온 변화가 시각적으로 확인된다. 원효사 대웅전 앞 누각에 오르니 무등산 북측 산자락이 치마폭처럼 펼쳐진다. 하늘은 흐리고 색이 바랜 겨울 산은 을씨년스러운데, 산 정상에는 하얗게 눈이 덮였다. 눈구름에 덮인 능선과 하늘의 분간이 어렵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터널을 이룬 임도를 따라 약 5㎞를 걸으면 드디어 해발 900m 부근 능선에 닿는다. 임도 개설로 잘린 절벽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본격적으로 설국으로 들어간다.

장불재에 도착하니 아래서는 상상하기 힘든 평원이 펼쳐진다. 옛날 광주목과 동복현(지금의 화순군 이서면과 동복면)을 잇는 지름길에 자리한 높은 고개다. 광주천이 발원하는 곳으로 긴 골짜기 ‘장골’에 사찰이 들어서며 장불재로 변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장불재에서 바라보는 정상 능선은 챙 넓은 등산모처럼 부드럽다. 주목나무 조림지를 사이에 두고 왼쪽 서석대부터 오른쪽 입석대까지 완만한 능선이 이어진다. 보통 장불재에서 입석대를 거쳐 서석대까지 올랐다가 맞은편으로 하산한다.

판판한 돌무더기로 다져진 등산로를 따라 약 400m만 걸으면 바로 입석대다. 입석대는 조금 떨어져서 보면 운치 있고, 바로 아래 전망대에서 올려다보면 웅장하다. 높이 10~18m 돌기둥 30여 개가 늘어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5각, 6각의 돌기둥은 중간중간 분절돼 위태롭게 보이는데, 약 8,500만 년 전 용암이 분출하며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글 읽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입석대 돌기둥을 서고에 비유한다. 무등산을 사랑한 시인 범대순(1930~2014)은 산 이름과 같은 시집에서 “규장각 희귀본 고서같이 / 겹게 고개를 들면 서책은 더욱 높이 있다 / 천둥보다 더 진하게 쌓인 눈 그리고 푸른 하늘 / 산 겨울 정오에 서서 연월의 높이를 읽는다”고 눈 내린 날 입석대에 오른 감상을 읊었다.

둘레 2m가 넘는 돌기둥 아래에 어김없이 이곳을 다녀간 이들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범대순은 선인들이 남긴 무등산 산행 시문이 무수히 많은데, 한결같이 고통을 전하는 기록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 원인을 직접 암석을 타는 위험이 없었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무등산에 첫눈이 내리면…

입석대를 지나면 길은 조금 가팔라진다. 너덜겅 위에 다져진 등산로 주변에 삐죽삐죽 돌부리가 솟았다. 중간쯤에 기다랗게 휘어져 누운 돌기둥 몇 개가 보인다. 등산객 사이에선 ‘와불’이라 부르는데 ‘승천암’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산양을 잡아먹고 승천하려던 이무기, 쫓기는 산양을 숨겨준 스님의 전설이 마치 사실인 양 적혀 있다. 이곳에서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면 말 잔등을 닮았다는 백마능선이 장관이라는데, 눈구름에 덮여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구름 속인 듯 안개 속인 듯 무아지경이다.

드디어 해발 1,100m 서석대 정상에 오르니 눈바람이 매섭다. ‘무등산에서 바라본 광주’ 안내판에는 송촌보, 월드컵경기장, 어등산, 광주시청, 아시아문화전당, 광주역 등 나주 방면에서 영광 방면까지 광주 시내 전경이 파노라마로 표시돼 있는데 보이지 않으니 장쾌한 풍광을 짐작만 할 뿐이다.

여러 명산과 마찬가지로 무등산 정상도 천왕봉이지만 사실상 최고봉은 서석대가 대신하고 있다. 안내판에 ‘천왕왕 옛 모습’ 흑백사진이 붙어 있다. 기암괴석이 다발을 이룬 풍광이 금강산을 옮겨 놓은 듯 우람하고 아기자기한데, 군사시설이 들어서며 사라지고 말았다. 지난 9월 서석대에서 천왕봉으로 가는 길목의 인왕봉 전망대까지 400m 탐방로가 57년 만에 개방됐지만, 현재는 정비를 위해 다시 막혀 있는 상태다.

무등산의 최고 절경 서석대를 제대로 보려면 주상절리 아래 전망대까지 내려가야 한다. 하산하는 숲길로 접어드니 바람은 잠잠해지고 나뭇가지마다 온통 눈꽃이 피어 환상적인 설경이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보는 서석대 설경은 말할 것도 없다. 높이 30m, 너비 1~2m에 이르는 돌기둥 200여 개가 병풍을 펼친 듯 수십 미터 이어진다. 난공불락의 바위 성벽이다. 관광 명소를 홍보하는 이미지에는 소위 ‘사진발’이 가미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서석대는 그 반대다. 단언컨대 무등산을 찍은 어떤 사진도 현장의 웅장함과 감동을 제대로 담지 못한다. 아무리 멋지게 찍어도 사진 속 서석대는 실제에 비하면 왜소하고 초라하다.

■낮은 골짜기까지 푸근한 어머니의 품

하산은 중봉을 거쳐 증심사로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서석대에서 고원 평지까지 등산로는 제법 가파르다. 대부분 커다란 돌덩이를 끼워 다진 길이어서 눈 오는 날에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특히 주의해야 한다. 가파른 산길이 끝나면 중봉까지는 평평한 억새밭을 통과한다. 1998년 군부대가 이전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회복 중이다.

중봉(915m)에서 중머리재(617m)를 거쳐 증심사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내내 가파른 내리막이다. 특히 중머리재까지 1㎞ 일부 구간은 경사가 수직에 가깝다. 그래서 대개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중머리재를 목표로 잡는다. 봄가을 소풍을 가는 학생들의 최종 목적지이기도 하다. 중머리재는 고갯마루의 넓은 풀밭을 스님의 머리에 빗댄 작명이다.

중머리재에서 증심사까지도 제법 가파르지만, 민가가 가까워질수록 거친 산길이 차츰 정겨운 마을길로 변한다. 계곡 주변에 흔적만 남은 돌담이며 대숲이 보이고, 마을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당산나무도 서 있다. 옛날 보리밥집이 있었다는 곳에 500년 된 커다란 느티나무가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멋진 풍모를 뽐내고 있다.

<광주=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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