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되돌아보는 2023년 주택 시장 (하)
▶ ‘고 이자율·고 주택가·매물 부족’ 트리플 악재
막강한 구매력을 갖춘 베이비부머에 의한 주택 구입이 많았던 해다. 사진은 노년층 바이어가 새로 분양되는 주택의 모델하우스를 둘러보는 모습. [로이터]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늘면서 반려동물이 주택 시장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 반려동물을 위해 큰 집을 이사하려는 바이어가 예년보다 늘었다. [로이터]
고 이자율, 고 주택가, 극심한 매물 부족 현상에 셀러, 바이어, 에이전트 모두가 힘든 해를 보냈다. 새 집을 살 때 적용되는 높은 이자율 부담으로 집을 내놓지 않으려는 셀러가 많았고 이로 인해 가뜩이나 부족한 매물은 바닥을 드러냈다. 극심한 매물 부족 현상 때문에 구입 자격을 갖추고도 매물을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바이어도 많았다. 모기지 이자율은 올해 한 때 8%를 돌파해 많은 바이어가 실망했지만 다행히 연말로 접어들면서 7% 밑으로 떨어져 새해 내 집 마련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 ‘셀러^바이어^에이전트’ 모두에게 힘든 해
‘셀러^바이어^에이전트’ 모두에 고통스러운 해였다. 고이자율, 고주택가, 매물 부족 3대 악재가 동시에 상존하며 주택 시장에 찬바람이 불었다. 여러 불확실성에 바이어, 셀러 모두 향후 주택 시장 상황만 관망 중이며 이로 인해 부동산 업계는 현재 어쩔 수 없이 개점휴업 상태였다. 모기지 이자율이 오르면서 주택 수요가 위축됐고 매물이 턱없이 부족해 셀러는 집을 팔고 싶어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 1년 내내 이어졌다.
매물 부족과 높은 집값의 최대 피해자는 첫 주택구입자였다. 복수 오퍼 현상이 여전한 가운데 첫 주택구입에 어려움을 겪는 바이어가 많았다. 그나마 한가지 다행인 점은 폭등세였던 임대료가 올해 잠잠해졌다는 것이다. 수년간 두 자릿수 비율로 오르던 임대료가 올해 진정되기 시작했다.
◆ 막강 구매력 베이비부머 매물 싹쓸이
베이비부머에 의한 단독 주택 구입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미 은퇴 연령층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베이비 붐 세대는 몇 년 전부터 활발한 주택 구입 활동을 펼쳐왔다. 현금과 주택 자산이 든든한 베이비 붐 세대는 다운페이먼트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 바이어와의 구입 경쟁에서 쉽게 승리하며 주택 매매 시장의 ‘큰 손’으로 등장했다.
주택 장기 보유로 그동안 주택 자산 가치가 충분히 쌓인 데다 최근 매물이 크게 부족해 집을 처분하는 데 큰 어려움도 없다. 다른 세대와 비교할 때 막강한 구매력을 갖춘 베이비 붐 세대는 현재 주택 시장에서 매물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세대로 주택 시장을 주도했다.
◆ 이자율 급등에 계약 중도 취소
모기지 이자율 급등으로 주택 시장에서 발을 빼는 바이어가 늘었다. 이자율이 갑자기 치솟자 디파짓 금액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미 체결한 주택 구매 계약을 취소하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부동산 업체 레드핀에 따르면 올해 8월 한 달에만 약 6만 건에 달하는 주택 구매 계약이 중도에 취소된 것으로 집계됐다. 8월 취소된 계약 건수는 전체 주택 구매 계약 중 약 16%에 해당하는 비율로 지난해 8월(14.3%)보다 높은 수준이며 2022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예상보다 높은 모기지 페이먼트 비용에 높은 클로징 비용, 주택 수리 및 유지비 부담까지 더해 계약 취소 결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중 일부는 구매 계약 체결 시 지불한 디파짓을 받지 못하는 손해까지 감수하면서 계약 취소를 강행해 이자율 급등에 따른 바이어 부담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줬다.
◆ 집 안 내놓는 셀러
주택 소유주들이 집을 내놓지 않는 것이 매물 부족 현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됐다. 유례없는 매물 부족 현상 때문에 주택 거래는 줄어도 집값은 오르는 비정상적인 상황까지 나타났다. 내놓은 집이 팔리면 셀러는 바로 이사 갈 집을 찾아야 하는데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섣불리 집을 내놓지 못하는 셀러가 대부분이다. 또 낮은 이자율에 묶여 집을 내놓지 못하는 이른바 ‘황금 수갑 효과’(Golden Handcuff Effect)도 매물 부족 원인으로 꼽혔다.
◆ 반려동물 위한 주택 구매
반려동물을 위해 집을 찾는 풍속도가 정착했다. 최근 자녀가 있는 가구는 감소세인 반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늘면서 주택 시장 트렌드도 변했다. 반려동물 위해 집을 찾는 바이어가 있는가 하면 반려동물 위해 큰 집으로 이사하려는 바이어까지 등장했다.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의 제시카 라우츠 선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반려동물 한 마리 이상을 키우는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56%에서 70%로 껑충 뛰어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로 인해 반려동물 때문에 큰 집으로 이사하려는 수요도 늘었다. 반려동물을 위한 동물병원, 강아지 공원, 산책로’ 인근 주택이 인기를 끌었다.
◆ 주택 보험 가입 포기 늘어
치솟는 보험료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가입을 포기하는 주택 소유주가 많아져 우려된다. 비영리단체 ‘보험정보연구원’(III)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주택 보험에 가입한 주택 소유주는 전체 중 약 88%로 불과 몇 년 전의 95%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주택 보험 가입률이 감소하는 것은 치솟는 보험료 부담 때문이다. 보험업계에 의하면 올해 주택 보험료는 전국적으로 약 20%나 급등했는데 기후 변화와 인플레이션이 보험료 인상의 가장 큰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보험 가입을 포기하면 더 큰 비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가입하는 것이 좋다.
◆ 변동 이자율 관심 높아져
높은 모기지 이자율로 인해 변동 이자율에 대한 문의가 늘었다. 모기지 시장 조사 기관 코어로직에 따르면 지난 4월 발급된 전체 컨벤셔널 융자 중 변동 이자율이 적용된 융자는 18.6%로 2021년 1월보다 4배나 증가했다. 변동 이자율의 가장 큰 장점은 고정 이자율보다 이자율이 낮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자율 변동에 따라 페이먼트가 갑자기 불어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점도 많다.
변동 이자율 모기지는 명칭대로 이자율이 변동하는 모기지 상품이다. 초기 이자율 기간에는 이자율 변동이 없지만 이 기간이 끝나면 정기적으로 이자율이 조정된다. 초기 이자율 기간 적용되는 이자율이 고정 이자율 모기지보다 낮기 때문에 올해 변동 이자율을 찾는 바이어가 크게 늘었다.
◆ ‘중개인협회^부동산 업체’ 반독점 위반 혐의
지난 10월 31일 미주리주 연방법원 배심원단은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와 홈서비스오브아메리카, 켈러 윌리엄스 등 대형 부동산 중개 업체가 공모해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인위적으로 부풀린 혐의가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약 50만 명의 셀러에게 약 18억 달러의 손해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평결을 내렸다.
이번 평결에서는 제외됐지만 2020년 제기된 집단 소송 피고 측이었던 리맥스와 애니웨어 리얼 에스테이트 등은 법정 밖 합의를 통해 총 1억 4,000만달러를 원고 측에 지급하기로 이미 합의했다. 애니웨어 리얼 에스테이트는 센추리21, 콜드웰뱅커, 소더비 인터내셔널 리얼티, 코코란 등 대형 부동산 중개 프랜차이즈 업체의 모회사다.
◆ 모기지 대출 한도 전격 인상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모기지 대출 한도가 내년부터 인상된다. ‘연방주택금융국’(FHFA)은 내년부터 ‘적격 대출’(Conforming Loan)에 적용되는 대출 한도를 내년부터 종전 72만6,200달러에서 4만350달러 인상한 76만6,550달러로 조정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적격대출은 국영보증기관의 대출 가이드라인에 부합하는 대출자를 대상으로 발급되는 대출로 프레디맥과 패니메이 등의 기관이 보증한다.
FHFA의 이번 모기지 대출 한도 인상으로 집값이 비싼 지역의 대출 한도는 일반 대출 한도의 150%에 해당하는 114만9,825달러로 오른다. FHA도 내년부터 FHA가 보증하는 모기지 대출 한도를 FHFA 적격 대출 한도인 76만6,500달러의 약 65%에 해당하는 49만8,357달러(1 유닛)로 상향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FHA의 대출 한도 인상은 전국 3,138개 카운티를 대상으로 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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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최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