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알리바바의 ‘득템’은 정당한가
2023-12-21 (목)
정영현 서울경제 기자
알리바바가 얼떨결에 주워들은 주문을 외치자 바위 문이 열린다. 동굴 안으로 들어선 알리바바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동굴 안에서 금은보화를 한가득 들고 나온 알리바바는 그렇게 벼락부자가 된다. 훔친 물건들을 동굴 안에 쟁여뒀다가 알리바바에게 털린 도둑떼는 분노의 복수전에 나서지만 운 좋은 알리바바는 형네 여종의 기지 덕에 도둑 떼를 물리친다. 잠재적 위협 요소까지 제거한 알리바바는 아들에게 부의 상속·증여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아랍 구전문학 ‘아라비안나이트’에 실린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줄거리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새삼 꺼낸 이유는 요즘 유통가에서 가장 핫한 중국 직접구매 채널 ‘알리익스프레스’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말하고 싶어서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온라인 쇼핑 계열사다. “열려라 참깨”를 외친 알리바바의 눈앞에 상상도 못한 장면이 펼쳐지듯이 알리에 처음 접속한 사람들 대다수가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을 한다. 별의별 상품이 다 있는데다 가격표는 믿기 힘든 수준이다. 국내 일반적인 온·오프라인 쇼핑 채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유사 상품 가격의 반의 반값이 수두룩하다.
다소 어색하지만 한국어 서비스도 나름대로 친절하게 하고 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상품명만 다를 뿐 생김새는 똑같은 상품도 적지 않다. 부속품이 복잡한 전자기기나 성분을 일일이 확인할 길 없는 화장품과 달리 제작 과정이 단순한 상품들의 경우 구매 불안감도 덜하다. 갈등하던 찰나 국내에 유통되는 수입품 중 상당수가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생각에 이르면 주문 버튼을 누르기가 한결 쉬워진다. 무료 배송을 선택할 경우 물건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기간이 꽤 길지만 그래도 가격 메리트를 생각하면 기다릴 만하다.
이렇게 소비자들이 ‘설마’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알리 쇼핑은 경험이 쌓일수록 두 번, 세 번 반복된다. 심지어 주변에서 운 좋은 득템 경험을 주워들은 사람들이 릴레이처럼 알리 쇼핑에 나서면서 알리 이용자는 폭증세다. 앱 분석 업체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알리 한국인 이용자 수는 지난 달 700만 명을 넘어섰다. 아직 1위인 쿠팡의 이용자가 4배 이상 많지만 한국 맞춤이 아닌 중국 쇼핑 플랫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무서운 성장세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가능한 사회에서 소비자들의 알리 쇼핑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쇼핑은 무심코 던진 돌과 같다. 죄 없는 개구리를 죽이는 돌, 바로 짝퉁 쇼핑이다. 샤넬·구찌·삼성·애플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도 알리 짝퉁에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국내 중소·영세 업체들은 벌써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고 있다. 이제 겨우 브랜드를 세상에 알리고 자리 잡아가던 찰나 알리에 깔린 자신의 의류 짝퉁 상품을 본 패션디자이너는 절망감에 휩싸였다고 했다. 한 땀 한 땀 만든 수공예 작품을 베낀 대량 생산품이 10분의 1가격에 팔리고 있는 것을 확인한 가죽공예가도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대기업 짝퉁 상품 역시 중소·영세 업체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해당 대기업만 타격을 받는 게 아닌가 하겠지만 가격대에 따른 소비자들의 선택 문제로 가면 피해 범위가 달라진다. 같은 금액으로 국내 중저가 브랜드 대신 유명 브랜드 짝퉁을 선택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어서다. 이런 왜곡된 소비가 일상화한다면 정직한 중저가 상품은 시장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다시 알리바바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알리바바가 우연찮게 ‘득템’한 부는 결코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꺼림칙하다. 도둑이 훔친 물건이라고 해서 알리바바가 동굴에서 들고 나온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알리에 널려있는 짝퉁을 사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짝퉁 생산만 도둑질이 아니다. 짝퉁 소비 역시 도둑질이다. ‘얼떨결에’ 혹은 ‘호기심에’ 해본 소비일지라도 누군가의 지적재산권을 훔치는 행위다. 나아가 누군가의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짓이다.
국내 유통시장에서 알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요즘 정부와 알리 측에 관리 감독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동참 없이는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살림살이가 팍팍한 시절이기는 하나 기본이 중요하다. 정직하고 바른 소비가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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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현 서울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