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일상의 충전기다. 하지만 지난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110만 명 가까이 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발표한‘2018∼2022년 수면장애 환자 진료 현황’에서다. 수면장애로 진료받은 환자가 2018년 85만5,025명에서 지난해 109만8,819명으로 5년 새 28.5% 증가했다. 수면장애는 불면증, 수면 관련 호흡장애, 과다수면증, 일주기 리듬 수면장애, 수면 관련 운동장애 등 수면과 관련된 여러 질환을 통칭한다. 수면장애 증상으로는 잠들기 힘들거나 수면 유지가 어렵거나, 낮에 너무 졸리거나 피곤하거나, 수면 중 잠꼬대하거나 몽유병이 나타나는 것처럼 이상 행동이 나타나는 것 등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루 7시간 잠자면 ‘건강한 수면’
수면이 부족하거나 질이 떨어지면 신체·정신적 활동에 문제가 발생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고 다양한 질환에 취약해진다. 불면증 환자 중 85~90%가 우울증·불안장애·수면무호흡증 등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을 얼마나 자면 정상일까. 이헌정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건강한 수면은 개인차가 있지만 하루 7시간 정도 잠자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갓난아기처럼 숙면을 취하면 잠을 조금만 자도 피로가 풀리므로 수면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4시간 정도만 잠을 자도 충분한 사람이 있다.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일찍 잠자리에 들기 마련인데 절대로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잠자려고 애쓸수록 잠은 멀리 도망가기 때문이다. 졸릴 때만 잠자리에 드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잠자려고 누웠는데 20분 넘게 잠들지 못한다면 차라리 졸릴 때까지 기다리다가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게 좋다. 뒤척이며 누워 있기를 반복하면 오히려 눕기만 해도 정신이 멀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낮잠은 삼가고 자더라도 15분 이내로 제한한다. 또한 낮 시간, 주로 햇빛이 비치는 시간대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 잠자기 전 격렬한 운동은 금물이다.
잠을 청하려고 술을 마시는 것은 삼가야 한다. 음주한 뒤 잠을 자면 알코올이 분해되면서 소변이 마렵고, 갈증을 느껴 화장실을 찾게 된다.
이주헌 강동성심병원 신경과 교수는 “잠자기 위해 마시는 술은 수면을 일시적으로 유도할 뿐 잠에서 중간중간 깨게 만드는 등 수면의 질을 떨어뜨려 다음 날 더 피로하게 만든다”며 “게다가 술을 하루 한 잔 더 마실수록 수면무호흡증에 걸릴 위험은 25%씩 늘어난다”고 했다.
◇4주 이상 불면증 시달리면 수면제 필요
불면증이 4주 이상 지속된다면 전문의를 찾아 수면제 처방 등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윤인영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거나 너무 자는 등 수면 문제는 심혈관계 질환, 치매와 파킨슨병 등 퇴행성 질환, 우울증, 졸음 운전 원인이 되므로 치료받아야 한다”고 했다. 다만 수면제 부작용으로 기억력 저하나 몽유병자처럼 밤에 잠자다 돌아다니는 것과 같은 이상행동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수면제를 적정 용량으로 2~3주 짧게 먹는 게 원칙이다.
수면제는 취침ㆍ기상 시간이 일정하지 않으면 효과도 떨어진다. 취침 시간을 정해 잠들기 직전에 먹어야 한다. 수면제를 먹은 뒤 잠자다 돌아다니는 등 엉뚱한 행동이나 기억력이 떨어지면 즉시 약을 끊어야 한다.
불면증에 처방되는 수면제로는 항(抗)불안제(벤조다이아제핀)와 신경안정제(할시온), 수면유도제(졸피뎀) 등이 있다. 항불안제는 불안 조절뿐만 아니라 수면 유도, 근육 이완, 경기(驚起)ㆍ발작 예방 등 다양한 작용을 한다.
억지로 뇌파를 졸리게 해 기억력이 떨어지고, 잠을 깨도 머리가 띵하고 개운하지 않은 부작용이 있다. 신경안정제 할시온(성분명 트리아졸람)도 불안, 짜증, 건망증, 공격적 성향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비벤조다이아제핀 수면유도제(졸피뎀)가 많이 쓰인다. 수면 유도 기능만 작용하게 해 부작용을 줄였기 때문이다. 의사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일반 수면유도제는 졸림을 부작용으로 동반하는 감기약 계열 약이다.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을 보충하는 ‘서카딘(서방형 멜라토닌)’도 있다.
이유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급성 불면증에는 수면유도제(졸피뎀)가 도움이 된다”며 “다만 수면제는 가급적 짧게, 필요한 기간, 최소 용량만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일부 수면제는 내성과 금단 증상으로 인해 중독 위험이 있고, 흔히 쓰이는 졸피뎀 계통 수면제를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못 잘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된다”고 했다.
<
권대익 의학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