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은 24절기의 21번째인 대설(大雪)이었다. 많은 눈이 내리는 때, 즉 겨울이 깊어지는 시기다. 절기를 입증하기라도 하듯이 최근 들어 날씨가 추워졌다. 외출을 자제하고 여유 시간이 날 때면 주전부리가 생각난다.
주전부리는 사전에 ‘맛이나 재미, 심심풀이로 먹는 음식’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때를 가리지 아니하고 군음식(끼니 이외에 먹는 음식)을 자꾸 먹는 것, 쉬지 않고 입을 놀려 먹어대는 음식을 말한다. 주전부리라는 말은 옛날에도 즐겨 사용했던 것 같다. 조선 후기 신교육 선각자인 조재삼이 저술한 조선 대백과사전 ‘송남잡지’에는 주전부리에 대한 재미있는 설명이 있다.
“술 마시는 사람이 술 마시기 전에 안주를 먹으면 술이 잘 받고 또한 크게 취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세끼 식사 외에 시도 때도 없이 쉬지 않고 입을 놀려 먹어대는 것을 주전부리(주전훼; 酒前喙)”라고 한다.”
여기서 “훼(喙)”라는 한자는 ‘새 부리’를 일컫는다. 새가 부리로 먹이를 계속 쪼아 먹듯 쉴 사이 없이 먹어대는 것을 말한다.
주전부리 단어는 어른들에게는 잘 사용하지 않고 아이들에게만 주로 사용했다. 군음식을 시도 때도 없이 자꾸 먹는 입버릇, 체신 머리 없이 자꾸 먹는 군것질이라는 뜻도 있어서 어른들에게 사용하면 버르장머리 없이 들리거나 기층민중들이나 사용하는 적절하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오랜 세월 인기 있는 군음식이다 보니 지역마다 표현하는 방언도 여러가지가 있다. 강원도에서는 조전부리라고 한다. 전라남도에서는 주전버리, 주념부리, 그리고 경상남도에서는 주진버리, 주진머리라고 한다. 경상북도에서는 군주줌부리, 주준부리라고 한다.
길거리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군고구마나 호떡이 가는 길을 멈추게 한다. 비 오는 날 집에 있을 때 생각나는 주전부리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기름으로 지지는 부침개이다. 안주나 반찬으로도 간단하게 만들어 먹기 좋고 입맛대로 부쳐 먹을 수 있다.
낮은 짧고 밤이 긴 겨울철 추억의 주전부리로는 골목 멀리서 들리는 찹쌀떡 메밀묵도 있지만, 직접 정성껏 만든 감말랭이가 있다. 집에서 칼로 하나씩 껍질을 깎아 자른 후 햇볕에 씹기 알맞게 말린 감말랭이가 좋다. 투명하고 오렌지색깔 나는 말랭이, 말랑말랑 쫀득쫀득 달콤한 맛이 참 좋다. 겨울철 추억의 주전부리로는 최고가 아닐까?
한국 고속버스 휴게소, 기차역, 터미널뿐만 아니라 길거리의 대표 주전부리로 손이 계속 가는 밀가루와 팥소로 만든 호두과자가 있다. 호두과자는 천안이 원조이다. 60-70년대 철도사정이 열악했을 때 열차들이 신호대기 또는 배차조정을 위해 분기점인 천안역에서 잠시 정차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항선과 경부선이 경유하여 이용객이 많은 천안역의 지리적 배경 덕택에 호두과자가 많이 팔렸고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한국인 주전부리로 명성을 날린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오징어 땅콩’이다. 마른오징어는 한때 땅콩과 찰떡궁합을 이루며 기차 안이나 영화관, 운동경기장에서 즐겨 먹는 최고의 국민주전부리였다. ‘심심풀이 오징어·땅콩’이라는 유행어가 나올 정도였다. 마른오징어 특유의 쫄깃쫄깃한 식감과 감칠맛이 땅콩의 고소한 맛과 잘 어울렸다.
영화관에 가면 필수 주전부리로 팝콘이 있다. 영화만 보면 허전하니까 팝콘을 하나씩 씹으면서 감상하면 입도 즐겁고 눈도 즐겁다.
스포츠 경기 구경하면서 특히, 풋볼 경기 때 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고 많이 먹는 주전부리는 닭 날개 튀긴 버팔로 윙이다. 풋볼 경기와 버팔로 윙은 환상의 콤비 주전부리로 자리 잡았다.
마트에 가면 주전부리가 넘쳐나지만 내 손으로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었던 추억의 주전부리가 엄지척이다. 날씨가 추워지고 밤이 길어지면 신토불이 주전부리가 그리워지고 먹고 싶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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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워싱턴산악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