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극단적 상황 속 연민의 눈으로 본 심금 울리는 영화

2023-12-08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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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자전거 도둑’(The Bicycle Thief·1948) ★★★★★(5개 만점)

극단적 상황 속 연민의 눈으로 본 심금 울리는 영화

새로 산 자전거를 들고 일터로 나가는 아버지 리치를 어린 아들 브루노가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

전후 이탈리아에서 태동한 네오 리얼리즘 영화의 걸작으로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흑백영화다. 극단적인 상황 속의 인간조건을 연민의 눈으로 솔직하게 들여다본 심금을 울리는 영화로 따스함과 유머, 우수와 비애 그리고 인간성이 가득히 배어있다. 물질적으로 빈곤하나 순수한 영혼을 지닌 인간이 불의의 불상사를 맞아 선과 악의 본성과 접촉하면서 겪게 되는 도덕적 이야기다.

전후 로마의 실직자 리치(람베르토 마지오라니)는 리타 헤이워드의 포스터를 벽에 붙이는 일을 얻는다. 이 일에 필수품인 자전거를 아내 마리아(리아넬라 카렐)가 침대 시트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산 리치는 근무 첫날 자전거를 잃어버린다. 이때부터 리치와 그의 어린 아들 브루노(엔조 스타이올라)가 자전거를 찾아 하루 종일 로마시내를 뒤집고 다닌다.

평범한 서민의 살아보려고 애쓰는 모습과 좌절감과 함께 자전거 시장, 만원버스, 사창가 및 달동네 등 전후 로마의 풍경 그리고 가난한 소시민들의 일상생활이 기록영화처럼 생생하게 묘사되는데 감독은 서민의 고통에 외면하는 경찰과 교회도 비판하고 있다.


리치는 좌절감에 시달리다 못해 아들이 보는 앞에서 남의 자전거를 훔쳐 타고 달아나다가 자전거 주인에게 붙잡히나 주인은 리치의 딱한 사정을 알고 그를 놓아준다. 자전거 주인이 리치를 용서하면서 우리는 리치와 함께 그동안 질머졌던 영육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된다.

인간의 약함과 잘못 그리고 용서를 단순한 내용 속에 솔직하고 소박하게 얘기한 작품으로 인간 영혼에 대한 맑고 아름다운 탐구요 인간 선행을 찬양하고 있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다.

다 떨어진 옷을 입은 리치가 브루노의 손을 꼭 잡고 군중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라스트 신이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카타르시스의 쾌적감을 맛보게 된다. 데 시카 감독은 비 배우들을 썼는데 특히 아버지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연민의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스타이올라의 얼굴 표정이 애처로워 못 보겠다. 불후의 명작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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