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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발성위기’의 시대, 그리고 미국

2023-10-30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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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46대째로 이어지고 있나. 그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위대한(The Greatest)’급으로 분류되는 대통령들이다. 이들은 이 타이틀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독립전쟁을, 남북전쟁을, 2차 세계대전을 남다른 리더십을 발휘해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니까 전시 대통령이었다는 게 바로 그 공통점이다.


긴장은 각일각 고조되고 있다. 이스라엘 방위군의 가자지구 전면 진입. 그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서. 이후 상황은 그러면 어떻게 펼쳐질까. 이스라엘군의 가자진입은 도화선에 불과할 수 있다. 이곳저곳에서 전선이 계속 열리면서 중동지역 전체로 불길이 번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가, 중국이….

‘다발성위기가 뉴 노멀이 됐다’-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쟁발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와 함께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악의 동맹’이다. 러시아, 이란, 북한 등 불량국가들이 제철을 만난 듯 국제질서 파괴에 나서고 있는 정황에서 싱크탱크 채트햄 하우스의 러시아전문가 케어 길리스가 한 말이다.

‘푸틴이. 시진핑이. 그리고 김정은도 서방이 중동사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면밀히 살펴 볼 것이다. 동시다발적 도전에 서방이 제대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경우 그 충격은 전 지구적으로 번질 것이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함께 루스벨트는 2개 전선에서의 전쟁과 맞닥뜨렸다. 대서양과 유럽, 그리고 태평양 전선이다. 오늘날 바이든은 5개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을 치를 수도 있는 위기를 맞고 있다.’ 애틀랜틱 카운슬의 할란 울먼의 지적이다.

‘첫 번째 2개 전선은 제 2의 냉전을 맞은 중국, 러시아와의 대립전선이다. 제3의 전선은 우크라이나. 제 4의 전선은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함께 새로이 열렸다. 마지막 제 5전선은 미국 국내에서 형성되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서 연출되고 있는 극한적 정파 대립이 그것이다.’ 그의 계속된 지적이다.

지나치게 비관적 분석이 아닐까. 그런 지적도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이 ‘5개 전선론’은 점차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 일종의 컨센서스로 굳어가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전선에서, 중동전선에서 미국이 고전을 거듭,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시진핑의 중국은 대만침공의 호기가 도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포린 폴리시지의 분석이다. 이와 함께 미국은 인도-태평양지역, 유럽, 그리고 중동지역 등 지정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 3개 지역에서의 동시전쟁에 대비해야 필요성을 이 잡지는 제시했다.


‘미국은 역사적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고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 고리로 연결된 하나의 전쟁이다.’ 지난 17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가진 바이든 연설도 같은 맥락의 지적이다.

바이든은 이 연설에서 대놓고 중국의 전쟁도발에 대해 언급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연설문 행간에서 그 가능성을 암시하면서 미국은 ‘민주주의의 병기창’ 역할을 재개할 것이라고 천명한 것이다.

‘상황은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것보다 더 위태롭다.’ 이코노미스트지의 분석이다.

미국은 과거 1970년대 소련의 조직적이고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던 때 보다 더 엄중한 상항에 봉착해있다. 이 같은 지적과 함께 이코노미스트지는 미국이 맞이한 대외적 위험을 세 부문으로 나누어 밝혔다.

그 첫째는 이란과 러시아에 의해 중동과 유럽에서 야기된 혼돈의 확산사태다. 이로 인해 전쟁이 자칫 미국을 빨아들일 형국으로 미국은 전 세계 반미세력의 공격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지지고 있다는 거다.

둘째는 국제정세의 복잡성에서 수반되는 위협이다.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는 미국에 결코 호의적이 아니다. ‘스윙 네이션’이라고 할까. 그런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등도 딴전을 펴고 있다. 이 같은 국제적 분위기는 수퍼 파워로서 미국의 역할을 한층 어렵게 하고 있다.

셋째는 가장 큰 위협으로 다름 아닌 중국의 도전이다. 중국은 미국의 대안세력으로 자처하면서 러시아, 이란과 블록을 형성하고 있다. 이란은 러시아에는 공격용 드론을, 중국에는 석유를 공급하고 있다. 그 대가로 중국과 러시아는 하마스를 뒤에서 조종하는 이란을 유엔에서 외교로 커버해주고 있다. 이런 협력관계를 통해 사사건건 도전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정파싸움으로 여념이 없는 워싱턴 정치다. 이코노미스트지가 특히 고질로 지적한 국내정치문제는 마가주의로 대변되는 고립주의 확산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우크라이나를 미국이 져버릴 경우 돌아오는 것은 미국의 위상추락에 중국의 대만침공 등 대혼란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 모든 난관을 극복, 바이든은 백악관 연설에서 밝혔듯이 ‘필수불가결한 나라(essential nation)’, 세계를 비추이는 횃불’로서 미국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냉전시절 워싱턴정가에 투신, 41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후 해외정책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대통령이 바이든이다. 그리고 위기 발생 시 동시에 2개 이상 항모전단을 파견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군사적 수퍼 초강이 미국이다. 그러니….

전시 대통령으로서 성공, ‘위대한 대통령’반열에 드는 바이든을 기대해 본다. 대통령의 성공은 바로 미국 전체의 성공이기도 하니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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