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가해자, 총기난사 범인, 아동 성학대자, 연쇄살인범… 이런 범죄자들은 자존감이 낮아서 그랬을까?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 주변의 따돌림, 심한 가난 등이 이들의 자존감을 형편없이 무너뜨렸던 것일까?
이전의 범죄심리학에서는 ‘그렇다’ 고 대답한다. 애인이 결별을 통보하면 목을 졸라 죽음에 이르게 한다거나 심지어 전 남자친구나 가족들을 찾아가 잔인하게 집단 학살을 행한 여러 실제 케이스 등 보복으로 인한 범죄자들은 자존감이 낮았다는 보고서들이 대부분이었다. 메릴랜드대학의 범죄 심리학자 르프랙 박사는 한 연구에서 “보복 범죄자들은 집착과 소유욕이 지나치게 강하고 자존감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별 통보나 의견 거부에 대해 자기 존재가 무시당했다고 받아들이면서 극단적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반대 시각의 연구들이 힘을 받고 있다. 이런 중범죄자들은 자존감이 낮은 게 아니라 지나치게 높은 게 문제의 발단이라는 이론이다. 왜곡된 모습의 비대해진 자존감은 지나치게 방어적이며 이것이 범죄율을 부추긴다고 보는 것이다. 무시당했다고 분노하는 것은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니라 근거 없이 팽창된 자존감 때문이며 ‘나는 남들과 다르지!’라는 자아의식에서 비롯된다. 남들보다 더 잘났기 때문에 좋은 대접을 받아야 마땅한데 누군가 이것을 몰라보고 자신을 건드릴 경우, 일례로 비행기를 회항시킬 수도 있는 공격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나야말로 대접 받을 자격이 있거든!’ 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흔히 나르시시즘이라는 자격의식과 공격성으로 뭉쳐있다.
위험한 칭찬은 고래를 병들게 한다. 오냐오냐~~ 너무 받기만 하고 살다보면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같은 조건, 같은 상황에서도 남에게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더 빨리 찾아온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바우마이스터박사도 이 점을 우려한다. “내가 남들보다 잘났으니까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리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공평한 세상’을 참을 수가 없지요. 자기가 누릴 수 있었던 지위와 권력, 명예 등을 부당하게 빼앗겼다는 게 그들의 그릇된 심리입니다.”
2년 전 서울에서 일가족을 살해한 범인 김태현(28)의 케이스도 위험한 자존감을 보였다는 점에서 범죄 심리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범죄현장을 재현하는 동안 기자들에게 “들어봐서 대답할만한 질문만 대답해주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수갑 찬 팔을 붙잡은 형사에게 “이 팔 좀 놔라!”하고 소리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던 점. 범죄를 저질러, 평소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던 사람들 앞에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의 태도는 범죄를 통해 자존감이 올라간다고 느끼는 가장 위험한 범죄자 심리를 대변한다.
10여 년 전, 노르웨이에서 폭탄과 총기난사로 77명을 죽인 범인 브레이비크는 여전히 수감 중인 상태에서 얼마 전 오슬로대학에 입학했다. 대량학살범의 교육받을 권리에 대하여 각계의 반대의견이 분분했던 것은 당연한 일. 오랜 논란 끝에 입학허가를 결정하는 일에 참여했던 심리학자들은 “범인의 비대하고 비틀어진 자존감과 자아상이 바로 잡아진다고 믿는 것이 교육의 기본 정의라는 데에 희망을 건다.”라고 말했다.
부풀려진 자존감, 내가 남보다 잘났다는 믿음이 악의 근원이다. 자존감은 어떤 행동을 하게하는 원인이 아니라 인생을 잘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결과라는 것이 현대 사회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연구결과이다.
<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