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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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가을 단상

2023-10-04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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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는 한 주 내내 비를 달고 살았다. 마치 하늘이 뚫린 듯 매일 눈만 뜨면 비가 내려 마음마저 음산했다. 그러나 어디 그게 매일 벌어지는 일이런가.

고통도 즐기면 즐거움이 된다고 했겠다. 주룩 주룩 내리는 빗줄기를 보면서 힘들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정겹게 바라보며 옛 생각이라도 하면서 젊었을 때 즐겨 부르던 팝송 ‘Rhythm of the rain’이라도 들으면서 말이다.

“떨어지는 빗소리 리듬에 귀 기울여 봐요/ 내가 얼마나 바보였는지 내게 말해주고 있어요/ 비가 계속 오고 날 그냥 빗속에서 계속 울게 내버려 두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시 혼자 있게 해주세요/ 내가 유일하게 관심을 가졌던 그 소녀가 떠나가 버렸어요/ 새로운 시작을 찾아서 말이지요/ 허지만 그녀는 잘 모를 거에요/ 그녀가 떠나가던 그 날 그녀는 내 마음도 함께 가져갔다는 것을요.../ 비야 제발 지금 말해 줘 그게 공평해 보이는지/ 나에 대해서 신경도 쓰지 않던 그녀가 내 마음을 훔쳐가 버렸다는 것이/ 내 마음이 어딘가 멀리 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을 이제 더 생각할 수 없어요/... (중략)


얼마나 낭만적인 노래인가! 듣다 보면 빗줄기가 아름답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 불러보다 보면 마음도 어느새 풍요하고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져 있지 않을까
일기 예보에 따르면 이번 주는 모처럼 활짝 개인 날의 연속이다.

매일 비만 오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희로애락이 오가기에 그래서 살맛이 나는 게 아닌가! 어느 때는 즐겁고 어느 때는 고통스럽고 또 어느 때는 슬프고 어느 때는 기쁘고 하는 날이 교차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본격적인 가을이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왔다. 이제 곧 온 세상이 만산홍엽으로 덮일 것이다. 가을은 분명 숙성의 계절이고 결실의 계절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하다. 70년대를 전후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땅을 밟은 한인 1세들은 이제 또 다른 시기를 맞고 있다.

마치 봄에 뿌린 씨앗이 뜨겁디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저마다 알알이 크고 작은 가을의 결실을 맺고 나서 이제 마지막 계절인 겨울의 문턱에 와 있다. 우리와 가까이 지내던 분들 중에 벌써 떠나간 분들도 많이 있다.

미국에 이민 와서 바쁘게 정신없이 살다 보니 추석이 언제인지도 모른 채 우물쩍 지나는 날이 허다했다. 추석이면 높고 푸르른 가을 하늘아래 어릴 적 어머님이 사주신 새 옷을 입고 좋아라 펄쩍 뛰며 동네친구들과 놀던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가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다. 고국에 있는 친지, 친구들도 유난히 생각나고 세상을 하직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도 더욱 가슴을 파고든다.

가을은 아름다움이요 그리움이고, 풍성함이요 자신이 살아온 생을 돌아보게 하는 사색의 계절이다. 남은 날들을 생각하면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 날인지 더욱 간절하게 와 닿는다.
매일 매일 다가오는 날들을 복된 하루로 생각하며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이 세상을 하직할 것처럼 치열하게 그리고 뜨겁게 살아야 할 것 같다.

누구보다 가까운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관계를 잘 유지하도록 가꾸고 보살피고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피천득 교수는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 낸다”고 하였다.

이제는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가 우리 1세들에게 던져진 명제이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 부도 명예도 가졌다. 봉사도 많이 했다. 그러면 이제부터 남은 시간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숙제인 것이다. 인생의 겨울을 마주하고, 이 가을에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하고 어떤 준비를 할 것인가. 나 자신에게 물어야 할 일이 남았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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