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렛은 우리집의 첫번째 펫이었던 기니피그(Guinea pig)다. 기니아가 원산지도 아니고, 안데스가 원산지인데 당시는 이국적인 문물에 기니아를 붙였다고, 돼지도 아니면서 억울하게 돼지 소리 듣는 기니피그는 미국 초등학교 교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긴 연휴, 성탄절이나 부활절 전후 짧은 방학이 오면 집에 데리고 가서 돌봐주는 손길을 찾는데 저요, 저요 경쟁이 치열하다.
타령 중에 들어주기 괴로운 게 얼라들 개타령인데 우리 애 역시 여덟 아홉살 무렵부터 시도때도 없이 졸라대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세 사는 처지에 개 키우기 쉽지 않다, 엄마 아빠 다 일 나가는데 강아지가 불쌍하다는 반 설명 반 읍소로 잠재우고 주말에 셸터를 찾아가 개구경하는 것으로 갈음하며 한동안 버텼다. 그러다가 타협안으로 나온 것이 기니피그였다. 모녀는 펫 마트에 가서 밤색이 반질반질한 숫놈을 데려왔고 이름은 만장일치로 초콜렛으로 낙착됐다.
사실 기니피그가 첫번째 펫은 아니었다. 햄스터가 먼저인데 우리 돌봄이 서툴었는지 본래 그런 건지 얼마 못 가서 작별했다. 결정적으로는 이름을 붙여주지 않은 상태에서 헤어진 게 기억에서 열외되는 이유일 성 싶다.
기니피그는 먹성으로 봐서 토끼와 비슷하다. 야채를 먹이는데 사각사각 이파리 줄어드는 모습을 보는 게 특히 사랑스럽다. 대신 오줌을 많이 싸서 계속 바닥을 갈아줘야 한다.
성질이 느린 건지 온순한 건지 케이지에서 꺼내놓고 같이 노는 재미도 있다. 애를 둘러싸고 세 식구가 삼각형을 만들어 얘가 어느 꼭짓점으로 가는지가 인기를 재는 척도요, 인기는 인성평가의 기준이 되는 법인데, 이놈의 선택은 대개 아내를 향해 우리 부녀를 실망시키곤 했다.
아내는 자기가 밥 챙겨주고 깔판 갈아주는 걸 애가 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기니피그가 인간의 발꼬랑내를 좋아한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렇고 또 날닮은 딸도 발가락이 좌악 벌어져서 무좀도 잘 안 걸리고 꼬랑내도 별로 없다. 물론 굳이 이런 합리적 추론을 대외적으로 발표까지 할 필요는, 용기는 없었다.
더 믿지 못할 아내의 또다른 주장은, 어거지는 초콜렛이 자기한테만 내는 독특한 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말없이 분주하기만 한 햄스터와는 달리 기니피그는 서너 가지 톤이 다른 휘파람 소리를 낸다. 아내는 그중 하나가 자기만을 향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님의 자유지만 날 붙잡고 들어봐, 잘 들어봐, 다르지, 확실히 다르지 하고 몰아세울 때는 감히 아니다, 잘 모르겠다 그렇게 대답할 자유가 내겐 없었다.
그렇게 3년 가까이 한 식구가 됐으니 우리가 새 땅을 찾아 애틀랜타로 이사를 갈 때 당연히 초콜렛도 천리길을 같이 갔다. 같이 갔는데... 초콜렛은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크리스마스 낀 윈터 브레이크의 어느날 아침 초콜렛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먼저 발견한 건 역시 아내였다. 세상과의 대면이 늘 버거운 나는 대성통곡을 하는 모녀를 두고 출근을 핑계로 서둘러 아파트를 나왔다. 도망자.
나왔으면 돌아가야 하는데,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초콜렛을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으로서 결정을 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궁리만 하다가 마땅한 해결책 없이 퇴근해서 집에 오니 종일 울어댄 태가 눈두덩에 역력한데 의외로 모녀의 표정은 차분했다. 둘이서 이미 장사를 치른 것이다. 초콜렛을 깨끗한 신발상자에 담아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던 아파트 뒷동산에 묻었단다. 딸내미가 쓴 장문의 이별편지와 함께.
늑대 같은 게 와서 파가지는 않겠지? 에이 이런 큰길가에. 조지아가 따뜻해서 다행이지 메릴랜드 같으면 땅파기 힘들었을 거야... 이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이런 말도 했겠지? 초콜렛은 앞으로 먹지 말자. 애 생각나잖아.
그날의 방성대곡을 떠올리면 3년상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달은 국상을 치렀을 법 한데, 자고 나서 곧바로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초콜렛을 빨리 잊으려면 강아지가 필요하다고 아이는 도서관에 가서 개에 관한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슬퍼하고만 있는 것보다는 나은 건가. 너무 빨리 잊는 건 아닌가, 아이의 태도변화가 살짝 얄밉기도 했다.
더 큰 변화는 내게서 일어났다. 뭔가 다른데 뭐지 이게. 숨쉬는 데 힘이 들지 않는 것이다. 몇년째 괴롭혀 온 천식기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기도에서 쌔액쌔액 소리 들리기 시작하면 한숨 못자던 숱한 밤들. 기관지 확장 스프레이 들이마시며 지난날 하루 두갑씩 피어대던 담배사랑의 벌을 받는구나 자책해 왔는데... 그 모든 고통이 기니피그 털 앨러지였던 것.
그렇다고 이 세상에 없는 초콜렛을 뒤늦게 타박했겠느냐. 이미 지나갔으니 담담히 그리워할 뿐. 너는 우리에게 기쁨도 주고 고통도 줬구나. 생명이란 것과의 관계 맺기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거창한가.
매달 둘째 주와 넷째 주 화요일 교육섹션에 정재욱 씨의 글을 연재한다. 소소하지만 공감이 가는 일상과 삶의 현장에서 보고 느낀 생생한 경험들을 독자들과 나눈다. 이 글 시리즈의 현판 ‘워싱턴 촌뜨기’는 미국의 수도에 살고는 있으나 여전히 낯설기만 한 ‘촌뜨기 신세’라는 작가의 뜻에 따라 붙였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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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