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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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가 늙어갈 때…

2023-09-18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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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 선거시즌을 앞두고 미 정치권을 짓누르고 있는 화두다.

노년층에 국가운영을 맡기는 과두정치 체제를 말하는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은 이 체제를 바람직하게 보았다. 연륜이 깊어져 원숙한 장로들이 통치를 하고 청년세대가 따르는 이상형 체제라는 점에서다.

늙어감에는 그러나 부정적 현상도 따른다. 체력이 달린다. 판단력도 저하된다. 그래서인지 때로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그 전형적 케이스의 하나가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연방상원 원내지도자가 최근 공개리에 보여준 해프닝이다.


그렇지 않아도 건강 이상설에 시달려왔다. 그런 그가 최근 한 달 새 두 번씩이나 공식 석상에서 말을 하던 중 갑자기 20~30초간이나 말을 못 잇는 ‘얼음’상태에 빠졌다.

재출마에 나서는 바이든 대통령도 매코널과 동갑으로 81세다. 그에 도전하는 트럼프는 77세이고 83세의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도 내년 11월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도전장을 던졌다.

이 같은 7080 정치인들의 출사표 러시와 함께 정치권의 고령화에 대한 논란도 고조되고 있다. 75세 이상 후보자는 정신감정을 거쳐야 한다는 등의.

미국정치는 이만 각설-.

독재자가 고령에 이르렀을 때 어떤 행태를 보일까. 일각에서 던져지고 있는 질문이다.

권력을 휘두르며 탄압을 일삼는 독재자는 정상적인 심리상태가 아닌 경우가 많다. 독재자들은 새디스틱, 반사회성, 편집증, 나르시시즘, 조현증, 분열증 등 6가지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한 연구 조사는 밝히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 심리상태의 독재자들의 집권기간이 길어지면서 흔히 빠져드는 것이 독재자 함정이다. 독재를 하면 할수록, 강압통치를 하면 할수록 강한 힘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 힘만큼이나 불안감 또한 커지지면서 더욱 힘을 과시하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또 다른 증후는 소통경색이다. 진실을 말하면 축출된다. 독재자 주변에는 온통 ‘예스 맨’뿐이다. 그런 구조에서 장기집권을 해온 고령의 독재자들은 그러면 어떤 특성을 보일까.

멀쩡해보이던 사람도 권력에 가까워지면 고개가 빳빳해 지는 등 이상한 행태를 보인다. 오랜 세월 파워의 중심에 있었다. 그 경우 인품이 원숙해지기 보다는 더 압제적이고 공격적이 된다는 게 터프츠대학의 마이클 베클리가 내놓은 진단이다.

또 다른 특성은 조급증이다. 나이가 들면서 뭔가 역사에 자신 이름을 각인시킬 업적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시간은 얼마 없다. 초조해지면서 더 공격적이 되는 거다.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이 바로 그 한 예다. 당초 중국이 서방자본주의 세력을 따라 잡는데 50~75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계산했다. 60대 중반에 접어든 무렵 그 타임 테이블을 대폭 줄였다. 그리고 몰아붙인 게 대약진운동이다. 독재자로서 터무니없는 야망에 조급증세가 겹쳐지면서 이는 4,500여 만의 인민이 굶어죽는 대참사로 이어진 것이다.

문화대혁명도 70대에 접어든 그의 ‘터무니없는 야망과 조급증세’, 그 조합의 결과다.

브레즈네프는 집권 초기 서방과의 데탕트를 추구하고 나섰다. 그러던 그는 집권 20년이 되어가고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서방에 적대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급선회했다. 공산혁명수출도 모자라 아프가니스탄침공에 나섰던 것.

여기에서 관심은 두 독재자에 쏠린다. 70줄에 들어 선 푸틴(71)과 시진핑(70)이다.

집권 2기가 지나면서 부쩍 공격적 행태를 보여 왔다. 신장 위구르족 인종청소도 모자라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무자비하게 짓눌렀다. 대만, 남중국해에서 줄곧 도발에 나서는 한편 ‘전랑 외교’를 통해 전 세계를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거기에다가 ’제로 코비드‘ 정책과 함께 중국을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었다. 시진핑이 보여 온 행태다. 그 결과는 고립에, ’폭망 경제‘다.

체첸, 조지아, 북 코카서스, 시리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그로인한 러시아군 전사자는 줄잡아 28만3,000여 명에 이른다. 그리고 또 다시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 27만여 명(우크라이나 측 추산)의 전사자를 냈다.

듣고 싶은 정보만 올라온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게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그 푸틴이 또 다시 자못 과감한(?) 행보에 나섰다. 북한의 김정은을 만나 포탄과 정찰위성, 핵잠수함 관련기술을 맞바꾸는 일종의 ‘스몰 딜’을 한 것이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명색이 세계 2위의 군사대국이다. 그런데 국제적 웃음거리인 김정은을 찾아가 포탄을 구걸한 것부터가 그렇다. 명색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그 러시아가 유엔헌장과 NPT(핵확산금지조약)체제를 스스로 허물고 나선 것도 그렇다.

이미 레드라인을 넘어선 푸틴의 그 행태에 우크라이나를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한다는 국제 여론만 높아졌다. 동시에 한국과 일본의 적극적인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가능성만 높였다.

김정은은 모처럼 국제뉴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화려한 쇼’는 잠간. 오히려 더 큰 부담을 안게 됐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제재가 대폭 강화되는 가운데 한미일 3각 체제, 쿼드, 더 나가 나토동맹국, G7까지 연계된 서방의 대대적 압박이 예상된다.

거기에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전하거나 푸틴이 실각할 경우 그도 같은 운명을

맞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23년 9월 13일. 푸틴과 김정은, 두 독재자가 만난 그 날은 유라시아의 독재 축. 그 붕괴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날로 훗날 기록되지 않을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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