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제국’은 뉴요커 매거진의 탐사전문기자 패트릭 키프의 지난해 베스트셀러다. 이 책은 제약회사 퍼듀 파마의 억만장자 오우너 새클러 가문의 오랜 탐욕과 오만을 추적하고 고발한다. 퍼듀는 오랫동안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콘틴’의 광범위한 사용을 부추기면서 1996년 이후, 미국인 약 50만 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갔다. 제품에 중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동안 회사는 1주일에 약 3,000만 달러씩을 벌어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극심한 통증으로 고통 받았던 대다수 환자들은 의사를 통해 처방받은 옥시콘틴을 사용하면서 짧게는 1주일 내에 중독증세를 겪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퍼듀는 신경안정제 등으로 블록버스터 급 성공을 거두면서 벌어들인 막강한 부를 기반으로 정부와 FDA에까지 영향력을 미친다. 이 책에서는 새클러 가문이 3대에 걸쳐 교묘하고 지속적인 방법으로 수많은 희생자의 죽음을 발판 삼아 엄청난 이득을 챙겨온 추악한 실체를 파헤친다.
같은 주제를 다룬 베스 메이시의 베스트셀러 ‘도프식’(Dopesick; 마약중독 이후 겪는 금단 증상)은 Hulu 드라마(2021)로도 만들어졌다. 거대한 제약사, 코네티컷 스탬포드, 중역회의실에서는 이윤을 높이기 위해 비열하고 악랄한 마케팅 속임수를 만들어내고, 같은 미국 땅 버지니아의 광산 커뮤니티에서는 각종 사고로 부상당한 근로자들이 단 1알 복용으로 12시간 고통을 견딜 수 있다는 신약을 소개받은 이후 중독, 금단, 죽음에 이른다. 버지니아의 로어노크, 본래 마약과는 별 상관없는 평화로운 소도시를 배경으로,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다스리기 위해 처방약 ‘옥시콘틴’을 복용하면서 중독이 시작되고 점점 더 자극적인 약물을 찾아 헤로인에 물든다.
희생자 가운데는 10대 청소년이 다수 포함되어있는데 이들은 옥시콘틴 과다복용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 것으로 밝혀졌다. 오피오이드 약물의 중독성과 위험성이 명백한데도 제약사는 병원과 의사들에게 금전적인 로비를 제공, 환자에게 과처방을 조장하고 책임을 회피했다는 사실에 제작진, 희생자 가족들뿐 아니라 미국민 모두가 분노한다.
역시 같은 주제를 다룬 드라마 ‘페인킬러’(진통제)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방영중이다. 이들이 어떻게 비공식적으로 FDA 승인을 받아냈는지(FDA 담당직원은 나중에 퍼듀의 고위급 인사로 이직), 그 승인을 손에 쥐자마자 젊은 싱글 미녀들을 판촉 사원으로 영입, 고액 인텐시브를 제공하며 지방 의사나 병원들을 일대 일로 어떻게 접근하여 공략했는지에 관한 사기성 마케팅 수법을 낱낱이 공개한다. 한편 미 전역에서 희생자가 급증하면서 제약사의 음모를 파헤치는 젊은 법률가들의 희생적이고도 눈부신 활약도 함께 다룬다. 이 드라마를 통해 옥시콘틴에 포함된 오피오이드의 중독 위험성을 사전에 알았으면서도 돈을 위해 음흉한 책략을 감추는 새클러 가문의 추악함을 볼 수 있다.
퍼듀는 현재까지도 여러 개 주로부터 수천 건의 소송을 당한 상태인데 주정부와 최근 260억 달러 규모의 합의안에 서명했다. 약품을 유통한 업체들도 18년 동안 210억달러를 내야한다. 퍼듀는 유죄인정과 더불어 파산신청을 냈으나 대부분의 어마어마한 재산은 이미 해외로 도피시켰다는 의혹도 제기되어 있다. 옥시콘틴은 아직도 팔리고 있으며 약물중독에 응급 사용하는 날록손 역시 같은 회사가 만든다.
오피오이드성 진통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미 전역에는 은행 강도보다 ‘약국 강도’ 사례가 훨씬 더 많아진지 오래다. 국경을 넘어오는 마약카르텔의 위험만큼이나 마약상을 방불케 한 퍼듀 같은 악덕기업의의 횡포는 가히 악마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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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