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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법

2023-08-21 (월) 정상범 서울경제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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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미국 법무부는 미국의 주요 담배회사들이 흡연의 유해성을 숨겨 대중을 기만했다며 ‘리코법(Rico·조직범죄법)’ 위반 혐의를 들어 소송을 제기했다. 담배회사들이 수십 년 동안 흡연의 폐해나 니코틴의 중독성 등을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담합에 가담하는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이유에서다. 워싱턴DC 연방지법은 2006년 “담배회사들은 50년간 대중을 기만해 리코법을 위반했다”며 법무부의 손을 들어줬다.

리코법은 1970년 사업 구조가 복잡한 범죄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제정됐다. 미국 의회는 특정 범죄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일어났다는 점만 입증되면 직접 가담하지 않아도 다수를 한꺼번에 기소할 수 있도록 법안을 만들었다.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던 마피아 두목을 잡으려는 의도가 강했다.

리코법은 수차례 개정을 거쳐 기업의 부정 거래, 자금 세탁, 공무원의 뇌물 수수 등 조직적인 부패 범죄 전반으로 범위를 넓혔다.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은 맨해튼 지방검찰청 검사장 시절 금융사기 등을 일삼은 월가 금융 거물들에게 리코법을 엄격히 적용해 뉴욕 시민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는 리코법을 되살려 범죄 소탕뿐 아니라 부실 채권 판매 등 화이트칼라 범죄를 줄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조지아주 풀턴카운티 검찰에 의해 리코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트럼프가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해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한 1만 1,780표를 찾아내라”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협박 등의 방법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득하려 했다며 리코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또 트럼프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에 동조하는 줄리아니 전 시장 등 18명의 측근들과 조직적이고 다양한 불법행위를 모의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대선 불복을 조직범죄로 보기 위해 트럼프와 측근들이 ‘선거 부정’이라는 잘못된 주장을 퍼뜨리며 다른 주에서도 개표 결과를 뒤집으려 한 사실을 제시했다.

우리도 정치권이 조직범죄처럼 교묘하고 치밀한 방식으로 선거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할 경우에는 성역 없이 수사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등 헌법 질서를 지킬 수 있다.

<정상범 서울경제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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