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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적응

2023-08-08 (화)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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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은 삶이 있던가. 각종 스트레스와 책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를 끌고 간다. 산업혁명 이래 복잡해지기 시작한 삶의 무게 때문에 심적 고통도 점점 깊어진다. 현대인들이 불안을 안고 사는 이유다.

일상생활을 하며 부딪치는 상황이나 상태를 너무 불려서 걱정해도, 전연 걱정을 안 해도 안 된다.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중간 정도의 걱정이 우리 삶에 필요하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속에 내재된 성적욕구나 공격적 충동에 대한 갈등이 불안심리를 일으키는 주춧돌로 생각했다. 그러나 에릭 에릭슨은 무의식보다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사회 문화적 환경에 대한 자아의 성장과정에 초점을 맞춰 불안감정을 다루었다. 프로이트는 갈등의 해결이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인간을 만드는 길이라고, 에릭슨은 정상적 자아발달이 불안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심리적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일, 소유, 인간관계, 건강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지금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한다. 손가락 몇 번 놀리면 알고 싶은 정보가 넘쳐난다. 그런 세상은 편리할 것 같으나 실은 불안을 더 자극한다. 불안을 크게 둘로 나눈다. 잠시 나타나 사라지는 불안은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삶의 자극제로 정상적 불안이다. 반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은데도 계속 놀라고, 안절부절 못하고, 걱정하면 병적 불안이라 칭한다. 병적 불안증세가 너무 심하여 일상생활의 삶에 지장을 주는 게 불안장애다.

정신질환 중 가장 흔한 게 불안장애다. 평생 불안장애에 걸릴 확률은 20%가 넘는다. 우울증, 양극성 장애, 정신분열증, 약물남용증 같은 다른 정신질환들이 불안증과 함께 나타난 경우다. 물론 불안장애의 종류(공황장애, 사회불안장애, 특정 공포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건강염려증 등)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사회의 지나친 경쟁, 자기중심적 확증편향, 대면 소통부재, 낮은 신뢰감은 불안장애 발생을 높여주고 있다. 생명에 직접 위험을 주는 병이 아니라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안 쓰나 불안장애야말로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적의 하나다.

코비드 팬데믹 이후 불안장애의 하나인 건강염려증 환자가 현저히 많아졌다. 코비드 19이 세균에 대한 두려움을 비이성적으로 확대했지 않나 싶다. 일반인 5명 중 한명은 몸과 마음에 이상이 생기면 자신이 병에 걸리지 않았나 하는 염려로 의사를 찾는다. 진찰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하면 바로 일상생활로 돌아간다. 그런데 사소한 신체증세를 확대 해석하여 무슨 중병에 걸린 게 아닐까 계속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진료와 검사를 통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 해도 믿지 않고 계속 여러 의사와 병원을 찾는다. 나중엔 의사를 의심한 나머지 자신이 직접 병을 알아내려고 신문, 잡지, 의학교과서, 유튜브 등을 수없이 찾아본다. 이러한 비정상적 사고와 행동이 6개월 이상 지속되어 사회인으로서의 기능을 잘 하지 못하면 건강염려증이란 진단을 붙인다.

2011년의 해일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일본 정부는 사고 당시 방사선에 오염된 물질이 더 이상 인체에 해가 안 된다며 바다에 방출할 계획이라 한다. 이에 한국사회는 일본산 물고기 수입 여부를 놓고 시끄럽다. 한국인은 유독 건강에 관심이 많은 만큼 건강염려증 환자도 많아지고 있다. 2008년 한미 쇠고기수입 협상에 따른 광우병 걱정 때문에 100만 인파가 촛불시위를 했던 일이 생각난다. 이기적 확증편향과 공포미디아가 말썽을 일으킨 사례였다. 아무쪼록 이번에 한국의 지도자들이 갈등과 적응의 원칙을 잘 응용하여 좋은 결과를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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