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해 집에 들어온 남편과 이를 부축하며 잔뜩 화가 난 아내, 취한 남편의 옷을 벗기며 대체 누가 술을 권했는지 구시렁 대는데, 이를 들은 남편이 갑자기 정신을 번쩍 차리더니만 “옳지, 누가 나에게 술을 권했단 말이요?” 따져 묻기 시작한다. 아내는 분을 삭이며 “지금 많이 취했으니 내일 술 깨고 (얘기) 하세요” 하는데, “천만에, 나 안 취했어. 누가 나한테 술을 권했을까? 내가 술이 먹고 싶어 먹었나?” 웃는 건지 화가 난 건지 가만히 있는 아내에게 남편은 대뜸 큰소리를 친다. “당신한테 물은 내가 잘못이지. 잘 들어봐요. 내게 술을 권하는 건 이 사회야. 사회가 내게 술을 권한다니까? 되지 못한 명예 싸움, 쓸데없는 지위 다툼, 내가 옳니 네가 그르니 밤낮 서로 찢고 뜯고 하는데 뭔 일이 되겠냐고. 내가 할 건 주정꾼 노릇밖에 없어.”
1921년 발표된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의 일부분이다. 살기 위해,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더 많이 갖기 위해 서로 다투어야 하는 현실을 술로 버텨낼 수밖에 없는 남편의 마음은 100년이 훨씬 넘은 현재에도 유효한 변명이다. 오늘도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 갈 때면 한 잔의 술이 간절한 것은 미국에서의 삶에서도 그대로다.
그래서일까? 미국에서 위스키와 테킬라를 비롯한 독주 판매량이 맥주를 앞섰다. 미국증류주제조협회(DSC)에 따르면 맥주의 시장점유율은 41.2%를 나타낸 반면 독주는 42.9%를 기록해 미국 주류 판매 역사상 처음으로 독주 소비량이 맥주를 제쳤다.
지난 2000년까지만 해도 28.7%에 그쳤던 독주의 점유율이 그사이 맥주를 앞설 정도로 급증한 셈이다. 맥주가 점유율 1위 자리를 빼앗긴 것 역시 미국 주류업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15개월 동안 10번의 기준금리 인상을 해야 할 만큼 역대급 인플레이션이 독주 소비량을 끌어 올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지만 맥주가 불경기에 강하다는 기존 통념이 깨진 것은 단순히 ‘술꾼’들의 취향이 바뀐 것을 넘어 예전과 달라진 미국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타협과 양보라는 기존 정치 경제적 미덕의 양상이 대립과 대결이라는 모습으로 대체되고 있다. 최근 들어 LA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파업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올해 들어서 LA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시위와 파업의 열기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달에는 LA항과 롱비치항의 서부항만 노조원들의 태업과 부분 파업이 극적인 잠정 합의로 대규모 파업을 피했다. 지난 봄엔 LA 교육구 소속의 학교버스 기사와 카페테리아 노동자, 교사들이 3일 간에 걸쳐 파업을 벌였다.
지난 2일부터 독립기념일 연휴까지 LA와 오렌지카운티 내 대형 호텔에 근무하는 임금 노동자들이 파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기에 지난 5월부터 시작된 할리웃 극작가 조합의 파업은 배우 조합 파업과 맞물려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갈등과 대립의 양상은 비단 노동 현장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적 성향의 연방 대법원은 지난해 낙태권 폐지 판결 내린 이후 올해 들어 대학 입학시 소수계 인종 우대 조치와 학자금 대출 탕감 조치에 대한 위헌 결정,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 커플에게 서비스 제공 거부를 한 사업자에 대한 헌법적 권리 인정 등 보수 드라이브로 일관하면서 미국 사회가 찬반 양론으로 갈라지는 단초를 제공했다.
대립과 대결이 지배하는 사회에 과연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공감의 마음은 존재할까? 그래서 일제와의 타협을 일절 거부하고 대신 술이라면 시간불문에 원근불문을 마다하지 않았던 현진건에게서 미국은 술 권하는 사회, 아니 독주를 부르는 사회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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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