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벨라폰테
Harry Belafonte 이름을 생각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한국인들에게 떠오를까? 언제가 필자가 여러사람에게 질문했을 때 거의 대다수의 대답이 ‘Oh Danny Boy ( 아 목동아)가 생각난다고 했다. 한국인에게는 이 노래가 뇌리에 박혀 있다. 왜냐하면 학창시절에 누구나 몇번씩 불러 본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친숙한 이 노래를 그는 가장 멋지게 잘 부른 가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애수가 깊게 담긴 그의 목소리가 이 노래와 잘 조화되어 언제 들어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자연히 눈을 감고 음미하게된다. 그 누가 이 보다 더 잘 부를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게 하는 불후의 명작 중의 하나이다. 그런 연유로 다른 가수가 부른 ‘아 목동아’는 왠지 모르게 무언가 부족함이 항상 느껴진다. 그의 명품 노래에 익숙해서 그런가? 아니면 이 노래는 그를 위한 노래인가 ? 우리들이 그렇게 좋아했던 그가 지난 4월 25일 96세 나이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너무도 애석한 소식이다.
1970년대 한국에서 통기타가 한창 각광 받을 시점에 그의 노래 ‘Jamaica Farewell’ 은 국내 통기타 가수들이 즐겨 부르는 애창곡 있었고 통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도전해 볼 싶은 명곡이었다. Harry Belafonte는 그는 원래 영화배우가 목표였다. 배우가 되기위해 뉴욕에있는 Dramatic Workshop에서 연기 수업을 신청했다. 그 수강료를 지불하기위해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으며 그는 그곳에서 재즈, 블루스, 발라드 송을 주로 노래했다. 그 연기학원은 Marlon Brandon, Tony Curtis, Sidney Poitier 등 후에 쟁쟁한 스타들이 양성된 유서 깊은 학원이었다. Harry Belafonte는 이곳에서 Sidney Poitier와 우정을 쌓기 시작한 곳이며 그 후 그들의 우정은 계속된다. 그의 노래 재능을 알아본 RCA Victor 음반회사는 그를 픽업하여 ‘Matilda’를 1953년에 발매했다. 이 라이브 음반은 청중과 함께 노래하는 라이브 스타일로 녹음하여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으나 상업적으로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는데 1959과 1960년 카네기 홀에서 거행된 콘서트 음반에 삽입되어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노래였다. 이 콘서트 음반은 영국에서 레코드 앨범으로는 최초로 밀리언 셀러가 되었고 미국에서도 당시로서는 최초로 5백만장을 판매를 기록한 음반이었다.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31주간 1위를 차지했다.
영화 배우로서의 경력은 1954년 ‘Carmen’s Jones’이어서 ‘Island In The Sun,’, ‘Odds
Against Tomorrow’ ,’Uptown Saturday Night’ 등에 출연했다. 영화나 TV에 출연한
작품은 많지 않지만 활동한 회수에 비해 상복은 많았다. 3대 영화상인 에미상, 아카데미상 그리고 그래미상 까지 모두 수상한 기록을 가졌다. 가수와 영화 배우로서 성공한 그는 서서히 인권 운동에 관심을 가져 이 분야의 대부 Martin Luther King Jr.와 함께 선봉에 서서 활동했다.그리고 UNICEF 명예대사를 지내기도했다. 상원의원이었던 John F. Kennedy가 대통령 후보 시절 그의 캠페인에 가담하여 홍보 담당을 지내기도 했었다. Kennedy대통령 당선 후 그는 평화 봉사단 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했다. South Africa흑인 차별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1985년에 거행된 자선 콘서트 ‘USA for Africa’를 위해 헌신 하기도 했다. 이 콘서트는 당시에 그는 그렇게 다채로운 활동을 쉬지않고 계속해었다.
음악적으로 그의 최대의 업적 중의 하나는 카리브 지역 토속음악인 ‘Calipso’를 잘 다듬어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1956년에 발표한 ‘The Banana Boat Song’은 지금도 스포츠 경기 때 홈팀의 응원가로 스피커를 통해 자주 들려 주는 곡이다. 이 노래는 원래 Jamaica에서 구전으로 전해오던 민요로서 1956년 Harry Belafonte가 새로운 가사와 멜로디를 편곡하여 Day-O 란 타이틀로 세상에 내놓았다. 팝 음악계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인 Calipso를 예상 외로 관심을 가져 그는 이 노래와 함께 Calipso음악의 왕이라고 불리게된다. 원래 Calipso음악은 원산지가Tirinidad & Tobaccos 있었고 점차 인근 지역인 카리브해 전반에 펴졌다. 세월이 지나 Jamaica 지역에서 꽃을 피우게 되었다. Harry Belafonte 는 뉴욕에서 태어났으나 그 부모들이 Jamaica출신들이다. 그는 Jamaica혈통에 자긍심을 가지고 고향 음악인 Calipso 전파에 노력을 기울어 ‘King of The Calipso’라 불리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