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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초조로 얼룩진 베이징의…

2023-06-19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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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스카이(袁世凱)는 중국 청조 말의 사람이다. 무관출신으로 변절을 밥 먹듯 하면서 난세에 오명을 떨쳤다.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짝퉁의 나라 중국에서도 ‘희대의 정치적 짝퉁’, 그 전형적 인물이라고 할까.

1882년 임오군란 진압 명목으로 약관 23세 때 한국에 온 위안스카이는 조선의 내정과 외교에 일일이 간섭해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악명은 사실에 있어 중국에서 더 자자하다.

청조 말 강유위 등을 중심으로 한 개혁운동을 좌절시킨 장본인이 위안스카이다. 개혁세력의 정변계획을 밀고한 것. 그런 그는 결국 청조를 배반하고 개혁세력 쪽에 붙는다.


변신은 그로 그치지 않는다. 혁명세력의 북진과 함께 청조가 망하면서 파워를 쥐게 되자 또 한 번 배신,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가 80여일 천하로 막을 내린다. 그런 그에게는 ‘중국 역사상 최악의 한간(漢奸)’이란 타이틀이 따라 붙는다.

그 위안스카이가 소환됐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을 만나 ‘내정간섭’ 논란을 일으킨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위안스카이에 빗댄 것이다. 한 세기만에 다시 들먹여지는 위안스카이의 불쾌한 기억. 무슨 함의를 지니고 있을까.

온 천하가 소란하다. 그 진원지는 다름 아닌 공산당 통치의 중국이다. 한동안의 유행 화두는 ‘중국 세기 도래’였다. 그 중국이 사방을 흘겨보면서 걸핏하면 근육 자랑이다. 관련해 심각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지역패권을 추구하고 있는가 하는.

그 질문에 제임스 매티스 전 미국방장관은 일찍이 이런 경고로 그 답을 대신했다. “중국은 현 국제질서를 개편하려는 오래된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 모델은 보다 난폭한 버전의 명 왕조 시절의 조공체제다. 천하의 중심인 중국에 다른 나라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는…”

과연 이룰 수 있는 꿈인가. 한 마디로 망상이란 것이 포린 폴리시지의 분석이다.

근현대사에서 지역패권달성에 성공해 수퍼 파워로 등극한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루이14세 시절, 그리고 나폴레옹 시절 지역패권을 꿈꾼 프랑스의 야망은 좌절됐다. 독일과, 일본의 패권추구 야망도 양차 대전을 겪으면서 모두 비극으로 끝났다.

현대에서 지역패권달성 성공의 확률은 20%도 안 되고 그 실패의 대가는 재난수준이란 것이 포린 폴리시의 지적이다.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숨진 프랑스 남성은 100만이 넘는다. 독일과 일본은 수백만의 희생자도 모자라 분단, 원폭세례의 끔찍한 대가를 치렀다.


왜 지역패권달성은 그토록 어려운가. 지역의 열강들은 한 세력의 독주를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 합종연횡(合縱連橫)을 해서든 어떻게든지 힘의 균형을 이루려 든다. 그 게 한 이유다. 패권주의 확산의 가장 강력한 장애물은 내셔널리즘이다. 그 게 또 다른 이유다.

러시아나, 미국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맞닥뜨린 것은 완강한 회교 내셔널리즘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모스크바가 고전을 하고 있는 이유의 하나도 내셔널리즘이다. 미국의 경우 지역패권을 추구하는 데 있어 이런 장애가 거의 없었다. 이런 면에서 행운이 따랐다고도 할 수 있다.

현재의 아시아의 지도를 들여다보면 중국은 그런 행운을 기대할 수 없다. 우선 미국이 버티고 있다. 거기에다가 월드 클래스 급의 열강에 속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다 인구 국이 된 인도, 일본, 한국, 호주 등. 일본과 한국의 경우는 유사상황을 맞게 되면 당장이라도 핵무장이 가능하다.

이 아시아 열강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치고 있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쿼드(QUAD), 오커스(AUKUS) 동맹 등의 형태로. 거기에다가 베이징은 불길한 뉴스에 계속 시달리고 있다. ‘중국은 잃어버린 10년 시기를 맞았다’, ‘중국의 파워는 피크에 도달했다’ 등등.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하던가. 중국의 경제적 침체는 구조적인 것이다. 거기에다가 시진핑 1인 독재체재 특유의 경직성으로 기술혁신은 기대하기 힘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구 감소에 고령화가 동시에 이어지고 있다. 2035년까지 근로연령 인구는 7,000만이 줄어 노년층 인구는 1억3,000여 만에 이른다는 전망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결과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반중정서는 날로 확산되면서 일대일로 사업도 지지부진이다. 중국의 맹방이라는 나라들의 꼴도 그렇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침공 여파로 파산직전이다. 북한, 파키스탄 등은 누더기 경제와 함께 내폭직전의 상황을 맞고 있다.

그래도 ‘중국몽’, 패권국가의 꿈을 베이징은 버리지 못하고 있을까. ‘아마도…’가 적지 않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자칫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확신과 함께 베이징은 더 패권추구에 박차를 가하는 그런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희망적 사고와 피해 망상적 강박증세, 다른 말로 하면 오만과 공포, 그 컴비네이션의 결과 과거 패권추구세력, 다시 말해 독일과 일본은 이른바 예방전쟁을 벌였다. 양차 세계대전이 그것이다.

모든 것이 안보, 안보다. 그래서 사이버공간 안보, 이데올로기 안보, 심지어 인민의 의식 안보까지 살피는 시진핑 체제의 중앙국가안전위원회 설립에서 바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오만과 공포의 컴비네이션이란 것이 포린 어페어스의 진단이다.

여기에서 위안스카이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자. 다 망해가는 제국이었다. 그 청조의 혈맥 속에 그러나 제국주의 DNA는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망해가는 주제꼴에도 조선의 내정도 모자라 외교까지 일일이 간섭하고 나선 것이다.

나대는 싱하이밍 중국대사. 그 모습 뒤로 어른거리는 것은 오만과 초조로 얼룩진 베이징의…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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