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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

2023-06-14 (수) 최상석 성공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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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열두 달 모든 달이 다 나름 의미가 있지만, 오월과 유월은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달이다. 법정기념일로 어버이날, 스승의 날, 어린이날, 부부의 날, 5.18 민주화운동기념일 등이 나와 있고 한국과 미국의 달력에 현충일(Memorial Day)이 들어있다.

5월과 6월의 모든 기념일은 우리 마음에 ‘고마움’을 불러일으킨다. 법정기념일이기에 고마워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고마움을 담고 있는 날이기에 법정기념일이 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고마움을 단지 한 개인의 감정 표현으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고마움보다 한자어 감사(感謝)를 격식과 품격이 있는 언어라 주장하기도 한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고마움’은 한겨레가 인간의 마음 저 밑에서 찾아낸 정겹고 심오한 독특한 낱말이다. 언어는 객관적 소통의 도구를 넘어, 우리 심성을 담고 있다.


언제부터 한민족이 고맙다는 말을 사용하였는지에 대하여는 주장이 분분하다. 여기서는 대략 15세기 전후 신 혹은 신적 경외를 뜻하는 고대어 ‘고마’를 어근으로 하여 ‘신과 같이 거룩하고 존귀하다, 신을 대하듯 존경하다’는 뜻으로 사용된 ‘고마오다’에서 고맙다가 나왔다는 견해를 받아들인다.

한겨레는 ‘신이나 자연을 포함하여 상대방에게 호의, 선대, 베풂, 은혜를 받았을 때 우러나오는 마음 곧 모름이나 부족함이 채워지고 상대방에게 존중받는다는 마음에서 오는 좋고, 벅차고, 흐뭇하고, 즐거운 그 어떤 감정과 마치 신을 대하듯 우러르고 받들고 싶은 그 어떤 마음’을 고마움이라는 토박이말로 언어화하였다.

이처럼 고맙다는 말은 내가 신세를 졌거나 나를 좋게 해준 상대방에게 돌리는 지극한 마음과 감정 그리고 어마어마한 칭송을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감사하다’보다 그 말이 드러내는 개시성(開示性)과 쓰임의 폭이 훨씬 더 넓지 싶다.

고마움의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가? 인간, 특별히 한 개인(낱사람)으로서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며 부족함을 지닌 ‘결핍적 존재’이다. 누구도 모든 면에서 다 완전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주의 이치다. 누군가 나의 부족한 점, 모르는 면, 없는 것, 할 수 없는 일을 채워주고 알려주고 슬픔과 아픔을 공감해줄 때 나오는 ‘그 마음’이 고마움이다. 고마움은 결핍을 매개로 서로가 서로에게 ‘삶의 이유’가 되어주는 조화(Harmony)의 자리이다.

한 시인은 그의 시에서 “… 고맙다. 고맙다. 다 고맙다. 이 세상은 고마운 것 투성이다.”라고 고마움을 노래했다. 우리는 고마움 속에서 살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한 생명으로 태어나 살아있는 것도 고맙고,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가 고맙고, 가족들, 벗, 스승, 민주화를 위하여 애쓰고 나라를 위하여 헌신한 분들… 등등 모두 고마운 분들이다. 지구를 비롯하여 태양과 달과 별들이 고맙고, 길가의 풀 한포기, 새 울음소리 그리고 이름 모르는 작은 벌레들도 고맙다.

고마움은 고마움을 낳는다. 세상은 고마움이 가득한 날을 기념일로 만들어 기억한다. 성경은 모든 일에 고마워하라(1데살 5;18) 말씀한다. 고마움의 삶이 하늘(하느님)의 뜻이라 말씀한다. 고마움은 상대방을 우러르는 삶이요 동시에 기꺼이 자신을 결핍적 존재로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기고백이다. ‘고맙습니다’ 말 한마디에 나와 너, 우주가 들어있다. ‘고맙습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우리가 있어야할 우리 모두의 집이요 고향이다.

<최상석 성공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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