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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푸사 드셔보았나요

2023-06-02 (금) 정재욱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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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가 날까지 따로 정해서 자랑하는 국민음식 푸푸사를 아십니까? 중남미 출신이 많은 지역에서는 푸드 트럭 혹은 실비 식당들에 푸푸세리아(Pupuseria)라 이름 붙인 걸 종종 볼 수 있다. 우리말로 하자면 호떡집이다.

반죽에 소를 넣어서 굽거나 익히는 요리는 여러 지역에서 내려오는 보편적인 음식, 내게는 부침개, 지짐의 느낌이다. 속에 뭘 넣느냐인데… 돼지 뱃살을 튀겨서 다진 치차론, 치즈, 콩이 주력이다. 셋을 다 넣은 짬뽕 스타일을 레부엘타(revuelta)라고 부른다. 그걸로 시키면 대개는 후회하지 않는다. 통닭에 무, 켄터키 치킨에 코울슬로, 짜장면에 단무지처럼 시큼한 샐러드를 곁들이는데 쿠르티도(curtido)라고 부른다. 시큼하니 좋다는 분들도 있는데 가끔 점심으로 푸푸사 두세 장을 사먹는 내 입에 썩 맞지는 않는다.

피자에야 훨씬 못 미쳐도 푸푸사 역시 미국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별식으로 재미삼아 번지는 것인데 그 배경이 되는 역사는 십년 내란으로 지옥이 된 고향을 떠나 미국에 피난 온 엘살바도르 사람들, 뒷마당 중남미에서 미국의 얽히고설킨 과거가 그 뿌리가 있다. 이 난민들의 정착지가 엘에이와 바로 이곳 DC다.


푸푸사를 옥수수가루로 만든 호떡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우리가 알아온 옥수수 가루가 아니니까. 마른 옥수수를 갈아서 만든 콘밀(cornmeal), 그중에서도 입자가 고운 콘플라워(corn flour)류의 옥수수가루가 아니고 마사 아리나(masa harina)라고 부르는 중남미 특유의 제분방식이다.

흔히 콘이라고 부르지만 옥수수의 영어명칭은 원산지 멕시코의 원주민 언어에서 따온 메이즈(maize)이다. 콘은 작물의 종류를 막론하고 알곡을 일컫는 말이다. 이쯤 해서 귀 밝은 이들은 콘비프(corned beef)에 왜 옥수수 냄새가 나지 않는지, 그 수수께끼가 풀릴 것이다. 상하기 쉬운 소고기를 곡물알갱이 크기의 돌소금 가루로 염장해서 보관기간을 늘린 게 콘비프다.

메이즈, 스페인어로 마이즈(Maiz)에서 출발했기에 삼국지의 유능한 마씨 형제들처럼 마짜 항렬의 상품명을 중남미 마켓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곰표 밀가루처럼 옥수수가루의 대명사인 마세카(Maseca), 옥수수기름의 강자 마졸라(Mazola)는 멕시코의 대표 생필품 브랜드다.

다시 돌아가서 마사 가루가 콘밀과 어떻게 다른가 하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옥수수 알갱이를 석회수에 담았다가 치대고 삶아 반죽으로 만들어 그걸로 토티야와 타말레스를 해먹었다. 그러니까 마사는 반죽 형태이고 마사 아리나는 그걸 건조해서 가루를 상품화시킨 것이다.

석회수, 라임워터를 라임즙 짠 걸로 알았다면 오산. 석회수 혹은 잿물로 알칼리 처리를 하는 방식으로 비타민 B3 니아신 성분이 소화에 용이한 형태가 된다. 생으로 갈아 만든 옥수수가루에만 의존하게 되면 니아신 부족으로 펠라그라라는 병에 걸리기 쉽다. 피부가 허옇게 마르고 그 부위가 햇빛에 닿으면 검게 나무껍데기처럼 얼룩진다. 속도 안 좋다.

콜럼버스는 옥수수를 유럽에 들여가기는 했으나 아즈텍의 오랜 지혜까지는 빼앗지 못했다. 싸고 양 많은 옥수수는 유럽의 가난한 계층의 주식이 되고 다른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 이들에게서 펠라그라 병이 나타났다. 설사에 치매까지, 18~19세기 유럽의 고민이었다.

영화에서 새하얀 피부에 아침 햇빛을 보면 재가 되는 드라큘라의 전설이 이 펠라그라 병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영화 박쥐에서 송강호와 예쁜 옥빈이도 그렇게 갔다. 콜럼버스의 잔악한 착취에 대한 옥수수의 복수인가.

<정재욱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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