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졸업시즌이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각계 유명인사들이 명문대 졸업식에서 남긴 축사들이 뉴스를 타곤 한다. 졸업 축사는 드물게 졸업생 대표가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사회적 명사들이 초청된다. 정치가, 유명인, 연예인 등 각 분야에서 성공하여 삶의 모범이 되는 인생 선배들이 연단에 올라 주옥같은 조언들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때론 여기서 역사에 남을 명언, 촌철살인의 어록이 탄생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가장 유명한 축사는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에서 남긴 “Stay hungry, Stay foolish”일 것이다. 직역하면 “항상 굶주려라 항상 바보같아라”이고, 의역하면 “늘 갈망하고 언제나 우직하라”쯤 될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늘 겸손하게 도전하라는 뜻이겠다.
이 연설에서 잡스는 입양아였던 출생부터 대학을 중퇴하고 애플을 창업한 이야기, 자신의 회사에서 해고됐다가 넥스트와 픽사를 세워 성공을 거두고 다시 컴백한 스토리, 그리고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실까지 그의 전 인생스토리를 14분간 담담히 들려준 후 마지막에 이 파워풀한 두 마디를 남겼다.
그런데 이 짧고 힘찬 문장은 사실 그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젊은 시절 애독한 반문화 잡지의 마지막 호 표지에 적혀있던 글이었다고 밝힌 잡스는 이후 그의 좌우명이 된 이 두 마디가 졸업생들에게도 그러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스피치를 마쳤다.
실패와 상상력의 힘에 대해 이야기한 ‘해리 포터’의 저자 조앤 K 롤링의 2008년 하버드대 졸업식 축사도 명연설의 하나로 꼽힌다. 대학졸업 후 겪은 실패의 연속, 이혼과 실직의 늪에서 딸을 먹여 살리느라 처절하게 고생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상상력이 ‘해리포터 시리즈’ 탄생의 밑천이 됐다고 했다. “바닥을 친 것이 단단한 토대가 되어 인생을 재건할 수 있었다”는 그는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길이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이야기인가 하는 것이다. 인생도 그렇다”라는 세네카의 명언으로 축사를 끝맺었다.
하버드 출신 코미디언으로 유명한 코넌 오브라이언의 2011년 다트머스 대학 졸업연설은 웃음을 자아낸다. “여러분은 오늘, 같은 나이의 미국인 92%가 누리는 것을 얻었다. 바로 대학졸업장이다. 여러분은 대학졸업장을 갖지 못한 8%에 대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낙오자 8% 중에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등이 있다”고 조크를 던진 그는 “열심히 하라, 겸손해라, 그러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라고 독려했다.
해마다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인기 연사들은 버락과 미셸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 오프라 윈프리,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고, 인구에 회자되는 명 스피치로는 카말라 해리스(2022, 테네시주립대학), 짐 캐리(2014, 마하리쉬대학), 테일러 스위프트(2022 뉴욕대학), 마리아 슈라이버(2022, 미시건대학), 덴젤 워싱턴(2011, 펜실베니아대학), 조지 손더스(2013, 시라큐즈대학) 등이 있다. 한국인으로는 아시안 최초로 아이비리그(다트머스) 총장과 세계은행총재를 지낸 김용 박사가 2013년 보스턴의 노스이스턴 대학에서 축사한 것이 거의 유일한 기록이다. 이 축사들은 모두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23년 졸업시즌도 어느덧 중반에 접어들었다. 코비드19 팬데믹 종료 후의 첫 대면졸업식이어서인지 어느 때보다 세리모니가 성대하고 연사들에 대한 관심도 높은 올해는 지난 13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워싱턴 DC의 하워드대학에서 축사 테이프를 끊었다. ‘흑인들의 하버드’라고 불리는 하워드대는 156년 역사동안 수많은 정치가, 법조인, 예술인을 배출한 명문사립이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백인우월주의가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테러”라면서 “증오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바위 밑에 숨어 있다가 산소를 쐬면 튀어나온다. 침묵은 공모다. 절대로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은 바로 다음날인 14일 시라큐즈대학 졸업식에도 영상으로 축사를 전했으며, 6월1일에는 공군사관학교의 연단에 설 예정이다.
한편 하워드 대학 출신인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은 27일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의 졸업식에서 축사를 했다. 여성이 웨스트포인트 졸업식에서 축사한 것은 사상 처음으로, 보통은 대통령이나 부통령 또는 합참의장 등 정부와 군 고위직 남성들이 축사를 도맡아왔다.
28일 콜로라도대학 졸업식에는 동문인 리즈 체니 전 연방하원의원이 연단에 올랐다. 공화당의 반 트럼프 대표인사로서 그 때문에 당내 서열 3위인 의원총회 의장직에서 쫓겨나고 의석을 잃은 소신파 정치인 체니는 이날도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트럼프의 거짓주장을 맹렬하게 비난하며 학생들에게 거짓과 타협하지 말고 진실을 수호하라고 설파했다.
올해의 깜짝 연사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다. 25일 존스홉킨스대학 졸업식에 화상연설로 등장한 그는 시간과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여러분 인생에 주어진 시간은 여러분의 통제 아래에 있지만 불행히도 러시아의 끔찍한 침략을 겪는 우크라이나인의 시간은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많은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고 호소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올해 하버드대학 연사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2회 수상한 탐 행크스였다. 더 이상 진실이 통하지 않는 미국사회의 현실을 개탄한 그는 졸업생들에게 “진실을 수호하고 미국의 이상을 지키며 진실을 왜곡하는 자들에 저항할 것”을 당부했다.
젊고 아름다운 졸업생들이 부디 이 조언들을 가슴에 새기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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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