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행기 폭발하는 줄”… 250m 상공서 문 열려 아수라장

2023-05-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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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폭발하는 줄”… 250m 상공서 문 열려 아수라장

26일 오후 대구국제공항에 비상착륙한 아시아나 비행기의 비상구가 당시 비상개폐되며 파손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비행기가 폭발하는 줄 알았어요. 비행기 사고로 이렇게 죽는 거구나 싶었습니다.”

26일(이하 한국시간) 제주공항을 출발해 대구공항 착륙 직전 출입문이 열리는 황당한 사고가 발생한 아시아나 항공기에 탔던 A(44)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도착 10분 전쯤 갑자기 폭발음과 함께 좌측 중간에 있는 문이 열렸다”며 “기압차가 발생하면서 에어컨과 송풍기로 보이는 곳에서 순식간에 먼지가 나와서 비행기 내부가 뿌옇게 변했다”고 말했다.

이어 “열린 문 쪽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기절하는 것처럼 보였다”며 “승무원들은 기내 방송으로 승객 중에 의료진이 있냐고 찾았고 사람들은 뛰어다니고 난리였다”고 전했다.


몇몇 탑승객들은 출입문이 열린 당시 상황을 목격하기도 했다. 한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자 승무원들이 다가갔으나 이미 출입문은 열린 상태였다. 직후 강한 바람이 기내에 들이닥쳐 상체가 뒤로 젖혀졌고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퍼졌다. 탑승객들은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귀가 찢어질 듯한 통증과 함께 항공기가 빠른 속도로 착륙을 시도해 ‘쾅’하는 소리를 냈다”고 전했다.

A씨는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이 갑자기 출입문을 열고 뛰어내리려고 했다”며 “승무원들이 남자들한테 도와달라고 외치고 주변에서 다 달라붙어서 그 남성을 비행기 안으로 당겼다”고 설명했다. 해당 남성은 착륙 직전까지 계속해서 탈출을 시도했다.

문모(46)씨는 “착륙 후에 비상구 쪽을 보니 남자 1명을 승무원과 승객 여러명이 붙잡고 있는 모습을 봤다”며 “승무원이 승객들에게 그 남성을 붙잡는 것을 도와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문씨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됐지만 착륙할 때까지 사고와 관련된 안내 방송도 없었다”며 “무사히 착륙했다는 내용만 항공사 측에서 방송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항공기는 문이 개방된 채로 착륙했다. 해당 항공기에는 27일 울산에서 열리는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참가하는 제주 초·중등 육상 선수들이 탑승했다. A씨는 “열린 출입문 쪽에 학생들이 많이 타고 있었는데 그 상황을 고스란히 목격했다”고 전했다.

육상부 코치 B씨는 “비행기 바퀴가 바닥에 닿기 전에 갑자기 문이 열렸다”며 “승무원들도 많이 당황해 보였고, 다급하게 앉으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총 38명 타고 있었는데 다들 놀라서 울고 소리지르고 했다”며 “아이들 심리 상태가 무엇보다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착륙 이후 모인 학생들과 인솔 교사들은 놀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다독였다.

비상 착륙한 항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긴박했던 순간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출입문 개방 사고가 발생한 아시아나 항공 OZ8124편 기체에는 곳곳에 비상 착륙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출입문을 통해 들여다본 기체 안에서 산소마스크가 보이지는 않았다. 산소마스크는 기압 차로 인해 호흡이 곤란할 때 자동으로 내려오는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착륙을 위해 지상에 접근하는 순간 사고가 발생해 마스크가 내려오지 않은 것으로 국토부는 파악했다. 사고 당시 마스크나 내려올 정도로 기압차가 크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상 250m 상공에서 열렸던 출입문은 일부가 손상된 채 여전히 열려 있었다. 또 출입문에 연결된 경첩은 강한 바람에 엿가락처럼 휘어 있었다. 출입구 문 바로 아래에는 평소 일반인은 볼 수 없는 비상 탈출용 슬라이드를 볼 수 있었다. 슬라이드는 비상구 문이 열리면 자동으로 작동해 비상상황시 에어백처럼 바로 펼쳐지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의 경우 승객들이 사용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국토부 조사 결과 이날 사고 당시 승무원들은 착륙을 위해 복도 건너편에서 안전벨트를 매고 좌석에 앉아 있었다. 사고 기종은 에어버스 A321 소형 기종으로 비상구 앞에 승무원이 배치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라고 국토부 관계자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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