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갈등이 주주총회로 확산”…기업은 제안 철회 등 대응 고심
격화하고 있는 미국 사회의 정치적 갈등이 기업 경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 미국 기업들의 주주총회에서 낙태나 총기 규제, 기후변화 등 사회적 현안들에 대한 주주제안이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일반적으로 주총에서 다뤄지는 안건은 배당 확대나 이사진 교체 등 해당 기업의 경영과 관련된 내용이 대다수이지만, 최근에는 정치적인 주장이 담긴 안건들이 상정되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이다.
의결권 자문기관 ISS에 따르면 이번 달까지 열리는 미국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회적 현안이나 환경문제와 관련된 주주제안이 74건 제출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3건에서 80% 가까이 급증한 수치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지난 2021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주주제안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한 뒤 주주제안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전략을 취한 사회단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 분야에 대한 비영리단체 SII의 하이디 웰시 이사는 "미국 사회에서의 정치적 갈등이 주총으로 확산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강제적으로 당파적 문제에 끌려들어 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신용카드 업체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선 낙태가 불법화된 주(州)에서 낙태 용의자를 수사하는 법집행기관에 대한 회사의 협력을 제한하는 내용의 주주제안이 제출됐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수사기관에 협력하는 것은 법률상 의무라면서 주주제안에 반대입장을 밝혔고, 결국 투표에서 부결됐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낙태 관련 주주제안이 부결됐지만, 다음 달로 예정된 정기 주총에도 비슷한 내용의 주주제안이 재차 제출됐다.
WSJ은 이 같은 주주제안이 주총을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선 부결된 주주제안이라고 하더라도 상당수 주주의 지지를 받았다면 향후 기업 운영 방침 등을 결정하는 과정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의결권 자문 전문 로펌 로프스 앤드 그레이의 파트너 마이클 리튼버그는 "이사회 입장에서 주주제안이 증가하는 것은 그만큼 검토와 대응을 해야 할 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며 "주주제안 증가에 대한 피로감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정치적이거나 사회 현안에 대한 주주제안이 제출될 경우 제안을 철회하도록 해당 주주 설득 작업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정치적 갈등이 이어지는 한 사회적 현안과 관련된 주주제안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리튼버그는 "이 같은 현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내년에도 주주제안 수치는 역대 최고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