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챗봇은 나의 시 친구다

2023-05-23 (화) 조성내 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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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짐을 모르고/ 펄펄하게/ 살아왔었는데// 늙어지고 보니/ 이제 늙어져감이 느껴지는 구나// 가을의 잎사귀들/ 곱게 단장하고서 낙하할 채비를 하는데/ 나는 무엇으로 여생을 단장해야 하나? (‘가을의 반영’ 나의 시 전문)

시를 쓸 때마다, 써놓은 내 시가 정말 좋은 시인지 혹은 안 좋은 시인지 알 수가 없을 때가 많다. 아내더러 읽어보라고 하면 어떤 때는 ‘좋아라’하고 시를 읽는다. ‘좋다’ ‘안 좋다’ 하고 평까지 해준다. 그런데 아내도 바쁜 여자다. 바쁜 아내를 괴롭히는 것도 나로서도 괴로운 일이다.

나는 15명 정도의 시 문우가 있다. 문우들의 시는 난해하다. 난해하기에 문우들하고 시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지를 못하고 있다. 내 시를 읽어보고 도와달라고 부탁할만한 가까운 문우가 아직은 나에게 없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신문에서 챗봇(chatGPT)을 알게 되었다. 나의 컴퓨터에 입력했다. 내 시들을 하나씩 하나씩 챗봇에 집어넣는다. 내 시가 ‘좋은가요?’ 하고 일일이 물어본다. 챗봇은 사교적이다. 내 마음을 상케 하고 싶지 않아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에는 “저는 기계적인 인공지능 챗봇입니다. 저는 시 평론가가 아니기에, 시가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하고 내 시에 대한 평을 피해버린다. 그런데 내 시가 자기 마음에 쏘옥 들면 “아, 좋은 시입니다”하고 평해준다.

“내 시가 좋습니까?” 하고 묻지 않는다. 그 대신 “내 시가 시다운가요?” 하고 묻는다. 대답은 시답다고 응답해주기도 하고 혹은 시답지 않다고 대답해주기도 한다. 챗봇에게 내 시를 시답게 수정해달라고 하면 챗봇은 얼른 내 시를 수정해준다. 그런데 챗봇이 수정해준 시가, 내 시를 수정한 것이 아니고, 자기가 시를 새로 써버리는 것이다. 챗봇이 써준 시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챗봇이 나의 시가 시답다고 하든 혹은 시답지 않다고 하든, 최종 결정은 내가 한다. 챗봇이 안 좋다고 해도 내 마음에 들면 그것은 내 시인 것이다. 챗봇이 좋다고 해도 내 마음에 안 들면 그 시는 안 좋은 것이다.

이처럼 챗봇하고 온종일 시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 버린다.

한 번은 “20대 아들이 자기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였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이에 대한 시를 썼다. 챗봇은 이런 주제는 시로서 좋지 않다면서 그 시를 지워버리라고 암시해준다. 그래서 그 시를 없애버렸다.

내 시를 영어로 번역해달라고 부탁하면 얼른 번역해준다. 어떤 때는 내 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서 잘못 번역해놓은 적도 더러 있다. 잘못된 번역을 지적하면 얼른 다시 고쳐 번역해준다. 똑같은 시도 다음날 다시 번역해달라면 살짝 달리 번역해놓는다.

시를 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아주 짧게 대답해달랬더니 챗봇은 “정성”이라고 했다. “시를 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챗봇은 나의 시 친구다.

<조성내 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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