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지정학(geopolitic)의 승리다.’ 기시다 일본 총리의 한국방문과 관련해 이스트아시아포럼이 내린 총평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침공, 날로 호전적인 수정주의세력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시진핑체제의 중국. 이로 인해 동아시아 안보환경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이 엄혹한 현실을 맞아 한 세기를 이어져온 한국과 일본의 껄끄러운 관계는 일단 부차적 문제로 접어두고 이루어진 것이 한일 왕복 정상회담이란 평가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정상회담. 그리고 바로 뒤이은 기시다 일본총리와의 회담. 이 잇단 연쇄 정상회담결과에 중국은 연일 크게 반발하고 있다. 듣기에 역겨울 정도의 거친 수사를 동원하면서까지. 그 모양새가 그렇다. 꽤나 초조해 있다고 할까.
중국공산당 군사위 기관지인 해방군보가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와 관련해 중국 인민해방군은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극히 이례적인 경고를 하고 나선 것이 그 하나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한미일 3국 동맹’으로까지 지목하면서 이는 동북아지역에서 갈등과 긴장을 고조시켜 안보에 심대한 충격을 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
관변매체를 통한 공격뿐이 아니다. 정부 고위당국자들도 직접 나서 비난의 포문을 열고 있다. 특히 격심한 반발을 보이는 대목은 ‘워싱턴 선언’을 통해 명기한 미국 전략자산 주기적 한반도 전개 확대를 포함한 북한의 핵 위협 대응 방안이다. 이 워싱턴 선언에 일본 참여 가능성을 열어놓은 데 대해 베이징은 경기(驚氣)마저 보이고 있는 것. 왜 그토록 안달일까.
어느 때보다 부쩍 강화된 한미일 군사협력관계, 그 너머로 뭔가 최악의 악몽(중국입장에서는)이 실체화되고 있는 모습이 어른거려서가 아닐까. 아시아판 나토(NATO)의 출현 가능성이다.
2021년 9월15일 미국, 영국, 호주 세 나라 정상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규칙에 기초한 국제 질서라는 지속적 이상과 공동 약속에 따라 파트너 국가와의 협력을 포함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외교, 국방, 안보 협력을 심화시키겠다.”
이와 함께 발족된 것이 3국의 새로운 안보파트너십인 오커스(AUKUS)동맹이다.
인도태평양지역에서 안보협력 강화와 정보기술 공유 확대를 목표로 한 협력체가 오커스로 그 첫 구상으로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미국과 영국이 지원키로 한 것이다.
성명에는 민주주의니 자유 등 추상적 단어만 나열됐다. 중국이라는 말은 한 마디도 들어있지 않다. 그렇지만 전하고 있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제 2의 냉전 상황을 맞아 대 중국 연합전선의 라인업이 짜여 지고 있다는 명백한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것.
그러니까 ‘인도-태평양 버전의 대서양헌장’이라는 것이 지정학계의 거두인 로버트 카플란의 진단이다. 중국으로서는 악몽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것이 뒤따른 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으로 이 동맹에 캐나다, 일본, 한국, 프랑스, 그리고 인도의 가입 가능성까지 점쳐왔다.
큰 그림은 그려졌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시진핑 체제의 횡포는 날로 더해갔다. 남중국에서, 동중국에서, 대만해협에서. 서해에서. 인도에서 필리핀, 호주, 일본에 이르는 이 지역의 나라들은 완력을 앞세워 패권추구를 해오는 중국에 공동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도-태평양 버전의 대서양헌장의 꿈은 요원하기만 했다.
인도-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은 한국과 일본이다. 경제력도 그렇고 군사력은 말 그대로 ‘월드 클래스’다. 그 한국과 일본이 상호 비협조적이다. 아니, 적대적 관계까지 보여 왔다. 해묵은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그러니….
그러다가 발생한 것이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거기에다가 그 푸틴의 깐부가 된 시진핑. 이는 거대한 지정학적 변화를 불러왔다. 아련한 꿈으로만 여겨졌던 인도태평양지역에서의 다자안보체제 출현을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전략은 이른바 '중심축과 바퀴살 동맹체제(Hub and Spoke Alliance System)'로, 이 바퀴살을 구성하고 있는 미국의 5대 조약동맹국은 한국, 일본, 호주, 필리핀, 태국이다
각‘바퀴살’과 ‘중심축’인 미국과의 관계는 나쁘지 않다. ‘바퀴살’간의 사이가 문제다. 툭하면 민족주의 대 민족주의의 대립 양상을 보이기 일쑤였다. 대표적인 것이 한일관계다. 호주와 일본관계도 태평양전쟁의 앙금으로 편안한 편은 결코 아니었다.
그 바퀴살 간의 관계가 급속히 회복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거기에다가 북한도 합세한 전체주의 독재세력의 발호가 가져온 결과다. 이와 동시에 '중심축과 바퀴살 동맹체제‘대신 나토 같은 다자동맹체제의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은 나토 동맹국들과 하나가 돼 지원함으로써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바로 이 사실도 아시아판 나토 필요성의 공감대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그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한일, 더나가 한미일 군사협력체 강화다. 이 3각 군사협력은 어느 정도의 전쟁 억지력을 가지고 있을까. 한미일 3국이 서해에서 동중국해, 남중국해에 이르는 지역에서 철통같은 방어선을 구축할 경우 베이징은 대만침공의 야욕을 접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 적지 않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023년은 역사의 한 터닝 포인트가 되는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아시아판 나토 출현의 전조가 보이기 때문이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지의 지적이다.
중국이 초조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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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