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찰스 3세 대관식의 장면들

2023-05-10 (수)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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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열린 찰스 3세 영국왕의 대관식을 따로 지켜보지는 않았지만, 지난주 내내 쏟아져 나오는 기사와 사진, 동영상들을 일별하며 느낀 감상은 기이와 경이였다.

인공지능(AI)과 더불어 살아가는 21세기에 왕관을 쓰고 홀을 들고 황금마차를 타고 군중의 환호에 손을 흔드는 왕의 행진은 마치 한 편의 사극을 보는 것처럼 기이했다.

그런 한편 중세로부터 1,000년 이어져온 웅장한 대관식의 전통이 현재도 변함없이 거행되는 유구한 역사의 연속성에는 경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인의 60~70%가 아직도 군주제를 지지하는 이유도 아마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만의 찬란한 유산에 대한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웨스트민스터사원의 대관식은 1066년 윌리엄 1세부터 시작되었으니 찰스 3세는 이곳에서 대관식을 치른 40번째 국왕이다. 그는 대관식에만 사용되는 700년 된 떡갈나무 왕좌에 앉아서 362년 된 세인트 에드워드 왕관을 쓰고 왕을 상징하는 보주(orb)와 홀(scepter)을 손에 든 채 종교적, 헌법적 의식에 따라 영국과 14개 영연방 왕국의 수장으로 즉위했다.

그가 머리에 쓴 성 에드워드 왕관은 1661년 찰스 2세 대관식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444개의 보석이 박혀 2.2㎏가 넘는 것이다. 이 왕관은 250년 후인 1911년 조지 5세가 다시 썼고,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이어 찰스 3세에게로 이어졌다. 70년전 엘리자베스 여왕은 왕관이 너무 무거워서 대관식 전날 몇시간 동안 써보는 연습까지 했다고 한다.

이날 카밀라 왕비에게도 왕관이 씌워졌는데 이것은 조지 5세 대관식에서 메리 왕비가 썼던 것을 새로 장식한 것이다. 카밀라 왕비가 ‘코이누르’(Koh-i-Noor) 왕관을 쓸지에 대해 한동안 관심이 모아졌으나 왕실은 외교적 논란을 의식해 이를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이누르’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다이아몬드로, 1,000년 전 채굴된 후 약탈과 정복을 통해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가 170년전 식민지 인도에서 빅토리아 여왕에게 바쳐진 것이다. 원래 191캐럿이었던 보석은 여왕의 장신구로 가공되면서 105.6캐럿으로 깎였고 여왕은 이를 목걸이, 팔찌, 브로치, 왕관 등에 다양하게 달아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알렉산드라 왕비(에드워드 7세 부인), 메리 왕비, 엘리자베스 왕대비(조지 6세 부인,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가 모두 대관식에서 코이누르가 박힌 왕관을 썼다. 따라서 카밀라도 그 전통을 이을 것으로 추측됐으나 왕실은 이 다이아몬드가 제국주의 영국의 침략과 식민지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다른 왕관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찰스 3세(74)는 영국 역사상 최고령에 왕좌에 올랐다. 70년이라는 왕위승계 대기 기간도 최장 기록이다. 탄생 순간부터 후계자로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왕세자로 지냈으나 그는 한 번도 왕실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젊은 시절엔 아내 다이애너 비의 인기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고, 카밀라와의 불륜에 따른 이혼으로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차남 해리 왕자와 며느리 메건 마클이 왕실과 불화를 빚고 떠나면서 치명타를 입었다. 게다가 어머니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높은 지지도의 그늘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동안, 국민들 사이에서는 그를 건너뛰어 장남인 윌리엄이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나돌았을 정도로 많은 수모를 겪었다.

그래서일까, 대관식을 마치고 웨스트민스터사원을 걸어 나오는 찰스 3세의 모습은 위풍당당한 왕이 아니라 지치고 힘 빠진 노인, 그 자체였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 위에 얹힌 거대한 왕관이 어찌나 무거워보이던지 쇠락한 영국 군주제의 현주소를 상징하듯 버거워보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 이후 영국과 영연방에서는 왕실의 존폐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는 10%가 넘는 물가급등 속에 허덕이는 시민들 사이에 많은 세금혜택을 누리는 왕실에 대한 불만이 튀어나오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는 1억 달러가 넘는 대관식 비용이 국민의 혈세로 소요됐다며 군주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의식해 찰스 3세는 선왕 때보다 왕실을 더 소규모, 저비용으로 운영하고자 노력하고 있고, 이번 대관식도 훨씬 간소하게 치른 것이 사실이다.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 때는 8,000명의 내외빈이 참석했으나 이번에는 2,000명 정도로 4분의 1로 축소한 것이 한 예다.

한편 해외에서는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모시는 15개 영연방 왕국 가운데 상당수의 나라들이 입헌군주제 폐지와 함께 과거 노예제에 대한 영국의 책임을 물어 배상을 요구하겠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여왕의 서거 이후 영연방의 구심력 약화가 예상돼왔으나 대관식을 계기로 본격화되는 분위기이고, 이제 영연방의 수장이 된 찰스 3세의 국제적 지도력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찰스 3세는 70년간 준비된 국왕이다. 개인적인 평판과는 별개로 내정뿐만 아니라 외교, 군사 분야에 대하여 지식이 풍부하고, 국내외 정세 판단에 관한 식견과 통찰력이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영연방 왕국이라는 체제를 수호하려는 의지도 강하지 않고, 공화국화 움직임에 반대 의견을 내지도 않고 있다,

영국에서는 군주의 이름을 따서 시대명을 칭하는 관습이 있다.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1세의 재위기간은 엘리자베스 시대(Elizabethan era),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기간은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였다. 이에 맞추어 영미권 언론들은 “찰스 시대(Carolean era)가 열렸다”고 말한다. 그의 시대를 맞은 찰스 3세가 평생 비축해온 비장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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