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들과 나란히 밤길을 걸을 땐’

2023-05-09 (화) 이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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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나란히 밤길을 걷다가 기도원 앞 다리께서 서로 눈이 맞아 달처럼 씨익 웃는다. 너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안쓰럽다거나 어느새 거칠어진 내 숨소리가 마음 쓰여서만은 아닐 게다. 아마 나란히 걷는 이 밤길이 언젠가 아스라이 멀어져갈 별빛과 이어져 있음을, 그리고 그 새벽에 차마 나누지 못할 서툰 작별의 말을 미리 웃음으로 삭히고 있다는 뜻일 게다. 아들과 나란히 밤길을 걸을 땐, 벙어리인 양, 서로 마주 보며, 많이 웃자.

아스라이 멀어져갈 것이 별빛뿐이랴. 가까운 것, 정든 것, 아름다운 것, 사랑하는 것들 모두 언젠가는 아스라이 멀어져갈 것이다. 나란히 걷다가 눈이 맞아 웃다니 그저 흐뭇한 줄로만 알았다. 서로 멀어져갈 날을 떠올릴 줄 몰랐다. 웃음의 이면이 촉촉하다. 아스라이 멀어져갈 가까운 이들을 돌아보게 하는 오월이다.

반칠환 [시인]

<이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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