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가 저보다 먼저 백악관에 갔지만 여기 미국 의회는 다행히 제가 먼저 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방 상하양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던진 즉석 유머다. 그보다 하루 전 국빈만찬에서는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를 열창해 환호성을 자아냈다.
이 장면, 장면들이 그렇다. 여유, 당당함, 품격. 이런 것들이 느껴진다. 과거 한국 대통령들의 미국방문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하나가 더 있다. ‘하나 됨’이라고 할까 하는 느낌이다.
BTS는 전 미국이, 아니 전 세계가 아는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다. ‘아메리칸 파이'는 미국의 전설적 포크록 가수 돈 맥클린의 곡으로 미국적 정서가 가장 잘 녹아 있는 노래다.
한류의 대명사격인 BTS와 미국의 전설 ‘아메리칸 파이’- 이 두 단어의 조합이 그렇다. 그 안에 뭔가 절묘한 코드가 숨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하는 말이다.
왜 K-pop이고, 왜 한류인가. 인류 보편타당의 가치관을 한국 고유의 코드에 접목해 표현한 것이 한류라는 데서 그 답은 찾아지는 것 같다.
‘미국이 대표하는 서방의 가치와 제도는 전 인류적 보편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 명제를 어찌 보면 서방세계 보다 더 잘 구현하고 있는 것이 ‘한류의 나라’ 대한민국이다. 여유, 당당함, 더 나가 ‘하나 됨’의 느낌은 군사동맹을 넘어선 가치관공유의 동질감에서 절로 스미어 나온 것은 아닐까.
이 상징적 장면들을 배경으로 동시에 새삼 드러나고 있는 것이 있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은 시점에 한국은 국제사회에 ‘필수불가결한 국가’가 됐다는 사실이다.
교역량으로도 그렇고 국제 정치에서 영향력으로 보아서도 한국은 일본, 독일, 캐나다 등에 비해 미국 입장에서는 비중이 떨어진다. 그 한국 대통령을 미국은 왜 ‘국빈방문’이라는 최고의 예우를 갖추어 초청했을까. 컨버세이션지가 던진 질문이다.
김정은의 북한은 100차례 이상 미사일을 쏴댔다.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러시아-중국-북한을 잇는 독재 권력의 축은 더욱 공고해졌다. 시진핑의 중국은 ‘전랑외교’로도 모자라 하루가 멀다고 대만해협에서 실탄기동훈련을 벌이는 등 양안관계는 날로 험악해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이어진 사태들이다.
급변하는 안보환경. 이와 함께 그 중요도가 날로 부각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워싱턴의 윤 대통령 국빈방문 초청으로 이 잡지는 바로 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까 평양, 베이징, 모스크바를 냉정하게 응시하면서 한국과의 유대강화를 과시한 외교행사라는 이야기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는 대폭 강화된 대북 확장 억제 조치가 포함된 ‘워싱턴선언’채택이다. 핵협의그룹(NCG)을 창설, 한미 두 나라가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는 공동작전을 협의한다는 것이 그 내용의 골자다.
이 워싱턴 선언에는 핵탄두 탑재 원자력 잠수함 등 미국전략자산의 정례적인 한반도 전개 확대도 들어있다. (이 ‘워싱턴선언’이 발표되자 미 공군은 핵 공격용 전략폭격기를 한국에 착륙시키고 또 정기적으로 한반도주변으로 전개시키는 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일본의 니케이지가 보도했다.)
‘워싱턴선언’은 그러면 단순히 한국에 대한 ‘핵우산’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전부일까. 중국견제의 의도도 다분히 포함돼 있다. 그동안 약한 고리였던 한국을 끌어당겨 한미일 3각 안보체제를 강화해 미국·영국·호주 3국 안보 협의체인 오커스(AUKUS),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의 쿼드(Quad) 동맹과 연계해 중국포위망 구축에 들어간다는 것이 ‘워싱턴선언’의 숨겨진 또 밑그림으로 보여 진다.
미국의 전략핵잠을 한국 해역에 전개한다는 것만 해도 그렇다. 미국의 오하이오급 전략핵 추진잠수함(SSBN)은 히로시마 원폭 32배 위력의 핵탄두 192발을 투하할 수 있다.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와 핵미사일보다 이 SSBN 1척이 보유한 핵전력이 훨씬 뛰어난다.
그러니 그런 SSBN이 서해에 수시로 출몰한다는 것만 해도 악몽이다. 거기에 세계 6위의 한국의 전력이 합세될 때 중국으로서는 감당이 안 된다. 이런 면에서 ‘머리가 깨지고 피 흘릴 것’이라는 등 중국이 연일 살벌한 언사를 뿜어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주목되는 또 다른 부문은 러시아의 침공과 같이 무고한 인명피해를 야기하는 무력사용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공동입장을 확인하고 우크라이나 지원 협력을 다짐한 것이다. 왜 애써 이를 공동성명에도 첨가했을까.
‘한국 무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 이 사실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은 윤 대통령 방미 중 잇달아 나온 미 언론의 한국방산 찬가(?)다.
전 세계 최대 포탄 비축량을 보이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라는 불름버그통신을 비롯해 포린 폴리시, 디플로매트 등 미국의 주요 안보외교 전문지들은 앞 다투며 ‘민주주의 병기창’으로서 한국의 방산능력 분석 기사를 쏟아냈던 것.
이 보도들의 행간 밖 메시지는 하나로 귀결되는 것 같다. 한국은 말 그대로 글로벌 중추국가의 일원이다. 그러니 서방의 책임 있는 당사국으로 그 역할을 다 하라는.
그 메시지를 받아들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우크라이나 전쟁을 서방의 승리로 이끄는 것은 중국의 대만공격, 더 나가 북한도발을 막는 첩경이다. 그런데다가 윤 대통령은 미 의회연설을 통해 대한민국이 글로벌 나침판 역할을 할 것을 전 세계에 천명했으니… 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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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