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인지부조화증세의 베이징과 모스크바

2023-04-24 (월) 옥세철 논설위원
크게 작게
오만하기 짝이 없다. 마치 ‘길들이기’에라도 나선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할까.

지난 19일이었나. 미국국빈 방문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로이터통신과의 회견에서 중국과 대만의 양안 갈등에 무력으로 대만해협 현상을 변경하는 데 절대 반대한다고 강조했던 것이. 윤 대통령은 또 러시아 침공으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학살 등 국제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군사적 지원을 고려 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그 발언에 러시아가, 중국이 보이고 있는 태도 말이다.


‘한국은 북한에 러시아의 최신(무기) 샘플이 들어가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전 러시아 대통령이자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의 발언이다.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지원 가능성을 내비치자 러시아는 한국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위협을, 그것도 공개적으로 해댄 것이다.

중국의 행태는 더 오만방자하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이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의 기시다 총리나 숄츠 독일 총리도 기회 있을 때마다 비슷한 언급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상대방의 간섭을 비난할 때 사용하는 저급한 말인, 부용치훼(不容置喙- 주둥이(喙)를 놀리지 말라는 뜻)란 용어까지 동원해 윤 대통령의 발언을 비난했다. 이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친강 외교부장도 나서서 “불장난 하는 자는 스스로를 태울 것”이란 섬뜩한 발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모스크바와 베이징의 날선 반응-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러시아의 실로비키세력(현 푸틴 정권을 떠받치는 군부, 정보기관, 군산복합체 등 무력부처 관련 정치가들의 파벌 및 권력실세들)은 아직도 스스로를 유라시아대륙의 최고 상전으로 착각하고 있다.

옛 소련의 향수에 젖어 있는 그들의 머릿속에는 소련 시절의 세계관이 그대로 남아 있다. 중국도 그들에게는 여전히 소련의 아류로 비친다. 그 너머 한반도는 장기 말 정도로 보고 있다고 할까.

원세계(청조말의 간웅으로 불린 위안스카이- 구한말 조선 국권 유린의 원흉)의 후예들인 중국공산체제의 만다린들도 비슷한 멘탈리티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의 의식 속에 중국은 천하의 중심이고 아직도 한국의 상국(上國)이다.


그 망상의 극치는 시진핑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2017년 트럼프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망언을 했다. 오늘의 한반도는 역사상 중국 땅의 일부였다고 만천하에 공포를 했던 것.

그런 멘탈리티의 모스크바의 실로비키들과 베이징의 만다린들은 심각한 인지부조화 증세를 보이고 있고 바로 그로 인한 반응이 아닐까 하는 것이 한 가지 드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그 와중에 드러나고 있는 새로운 사실. 그러니까 날로 더해가는 ‘민주주의 병기창으로서의 한국’의 중요성. 이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이 아닐까 하는 것이 또 다른 생각이다.

“동아시아는 중세시대 몽골제국의 침략이후 처음으로 유럽안보질서 형성에 중요 역할을 하고 있다.” 기시다 일본총리의 우크라이나 방문과 시진핑의 러시아 방문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과 관련, 포린 폴리시지가 한 지적이다.

중국은 이란과 함께 러시아 지원에 나서고 있다. 반면 일본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극 나섰다. 이와 함께 포린 폴리시지가 특히 주목한 것은 한국의 역할이다. 나토(NATO)의 가장 중요한 군사전진기지로 부상하고 있는 폴란드에 한국은 주 무기 공급국가가 됐다는 사실이다.

폴란드뿐이 아니다.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핀란드 등 러시아와의 접경지역 나토 국가들도 다투어 한국무기를 도입하고 있다.

그 한국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한국이 155mm 포탄 50만발을 미국에 대여한다는 보도다. 이 포탄이 그렇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거의 동시에 나온 보도가 한국이 430만발에 이르는 기관총탄과 120mm 전차 포탄 5만발을 폴란드에 공수한다는 거다. 그리고 이루어진 것이 윤 대통령의 로이터통신과의 회견이다.

이 보도들의 행간들이 전하는 뉴스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한국의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은 사실상 이미 시작됐다. 그리고 한국이 더 적극적 지원에 나설 경우 한국산 무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는….

이 번 주에 시작되는 한미정상회담에서 핵 공유를 통한 북한 핵 확장억지 방안이 확정될 경우 ‘게임 체인저’로서 한국의 역할은 더 확산,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

핵 공유는 확장억지 방안의 마지막 단계인 ‘독자적 핵 무기소유’의 바로 전 단계라는 것이 포린 어페어스지의 진단으로 도발 억지의 타깃에는 북한은 물론, 사실상 중국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국과 러시아가 경기를 일으킬 수밖에.

중국과 러시아에 정면으로 ‘노’라는 발언을 한 대한민국. 이는 다름이 아니지 않을까. 한국은 러시아, 중국이라는 거대 대륙세력의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반도국가라는 숙명에서 탈피,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a free and open Indo-Pacific)’지역의 일원으로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글로벌 중추국가’역할을 자임하겠다는…

<옥세철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