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심리학 분야 최고의 극적 프로젝트로 꼽히는 ‘스탠포드 프리즌 실험’은 끔찍한 비윤리성 때문에 아직도 비판의 대상이다.
1971년 8월, 스탠포드대 지하 연구실에 임시 감옥시설이 만들어진다. 연구자는 당시 명성을 휘날리던 짐바르도 교수. 연구목적은 ‘사회적 환경이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 한마디로, 착하고 선량한 사람이라도 악역이 주어지면 악랄하게 변할까? 라는 질문에 답을 찾자는 것이었다. 또한 자존감과 개성이 말살 당하고 뭐가 뭔지 생각할 힘마저 빼앗길 때 인간은 어떻게 변할까? 라는 질문의 답도 있다.
짐바르도 교수는 심신이 건강한 학생 자원자를 추렸다. 일당 15달러.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평범한 중산층 출신 18명을 교도관 9명, 죄수 9명으로 역할분담을 시킨 다음 교도관에게는 나무 곤봉과 카키색 교도관 복장, 죄수들이 눈을 마주치지 못하도록 검은 안경 등을 지급했다. 죄수들 머리에는 스타킹을 씌우고 잘 안 맞아 불편한 죄수복과 번호표를 나눠주었다. 실험 전 짐바르도 교수는 교도관들에게 지시했다. “죄수들을 육체적으로는 상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공포감을 주거나 교도관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가능하다. 죄수들의 사생활을 말살하고 모든 통제권을 발휘해도 좋다.”
첫날은 그럭저럭 지나가는 듯 했으나 곧 교도관들은 권위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고 가혹행위마저 일어나면서 죄수 2명이 견디다 못해 꺼내달라는 애원을 하기에 이른다. 둘째 날에는 스트레스에 지친 수감자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교도관들은 역할에 몰두, 소화기로 수감자들을 진압했고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면서 잔학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매트리스를 빼앗아 차가운 콘크리트 위에 재우기, 벌거벗기기, 대소변을 못하도록 고통주기, 남색 흉내 내도록 강요하기, 단식투쟁하는 죄수에게 강제로 퍼 먹이기 등. 2주간 예정했던 실험은 수감자들이 실제로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며 통제 불능 위기에 처하자 6일째 서둘러 막을 내렸다.
실험에서 얻어낸 메시지는 2004-2005년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이라크 포로들을 학대한 미군병사나, 심지어 유태인 학살을 저지른 나치도 모두 폭력적, 강압적 환경에 굴복했을 뿐이라는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었다.
여러 가지 윤리적 이슈에도 불구하고 ‘천성이냐, 환경이냐’에 관한 최고의 이론으로 꼽혔던 이 실험결과가, 수년전부터 ‘조작됐다’는 도전에 직면했다. 버클리 출신의 공학박사 벤 블룸이 당시 수감자 역할을 맡았던 한 학생, 더글라스 코피와 나눈 인터뷰에서 ‘나는 수감자 역할을 연기했다.’라고 한 고백을 인터넷 미디어에 ‘어느 거짓말쟁이의 수명’이라는 제목으로 낱낱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또한 짐바르도 교수의 실험조교, 데이빗 제프는 교도관의 고압적 행동들을 코치했었다고 폭로했다.
영국 심리학자들도 짐바르도 실험을 검증하기 위해 BBC의 지원을 받아 같은 실험을 실시했다. 하지만 ‘BBC 감옥실험’은 TV로 방영된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교도관이든, 죄수이든 자신을 의식하며 스스로 컨트롤했을 수 있다는 약점이 있다.
최고의 사회심리학자라는 명성과 실험조작 논란의 주인공,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2년 전 인터뷰에 답하는 형식으로 썼던 자서전이 지난달 한글번역판으로도 출판됐다. 심리학에 관심 있는 분이나, 인간 행동을 설명하는 심리 실험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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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