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파식적] 고르시코프 제독함

2023-04-13 (목) 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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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옛 소련이 붕괴된 후 옛 소련 해군을 넘겨받은 러시아 해군은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해 주력 함선들을 헐값에 내다 팔았고 새 군함 건조를 중단했다. 당시 키예프급 항공모함인 민스크함과 노보로시스크함은 한국 민간 기업에 고철용으로 매각되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들어선 후 경제가 회복되면서 러시아 해군의 현대화가 시작됐다. 우선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순양함·항모보다 표준화된 다목적 함정 개발에 나섰다. 2003년 개발을 시작해 건조를 완료한 새 호위함을 2018년 북방함대에 배치했다. 이 함정이 고르시코프 제독함이다. 이름은 소련 연방 해군 총사령관 출신의 ‘해군의 어머니’로 불리는 세르게이 고르시코프 제독에서 따왔다.

노르웨이·바렌츠해에서 주로 활동하는 북방함대는 발트함대를 능가하는 러시아 최강의 함대다. 고르시코프 제독함은 호위함인데도 4,500톤급의 배수량과 강력한 무장으로 순양함과 동일한 다목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사거리가 1,000㎞로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며 최대 마하 9의 극초음속 미사일 ‘지르콘’을 장착하고 있다. 러시아 해군의 미래 중심 전력으로 자리 잡을 주력 호위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고르시코프 제독함이 지난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항에 정박해 연료와 식량을 보급받았다. 러시아 군함이 사우디항에 입항한 것은 10년 만이다. 3월 중국·이란 해군과 함께 아라비아해에서 3자 연합훈련을 한 후 귀환길에 들렀다. 앙숙이었던 사우디와 이란은 최근 중국의 중재로 국교 정상화에 합의했다. 사우디는 앞서 원유에 대한 중국의 위안화 결제를 허용해 ‘페트로 달러’ 체제에 금을 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동에서 한발 뺀 사이에 중동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중국 방문 직후에 ‘유럽이 미중 갈등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각국이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 가치 동맹을 중심으로 결속을 강화하되 국익을 챙기는 정교한 외교가 긴요해지고 있다.

<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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