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파식적] 대만 총통의 ‘결투 방문’

2023-04-06 (목) 문성진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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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초 당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대만해협은 전운에 휩싸였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중대한 정치적 도발’로 규정했다. 중국인민해방군이 대대적인 실전 훈련에 돌입한 가운데 중국 군용기와 군함들이 대만해협 중간선까지 넘나들면서 한때 ‘4차 대만해협 위기’ 발발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3차 위기는 1995년 7월에 있었다. 당시 리덩후이 대만 총통이 미국 정부에 신청한 비자가 발급되자 중국에서 미사일을 쏘고 미국은 항모전단 파견으로 맞섰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날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만해협에서 위기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중국군은 2일 대만해협에서 미사일 호위함 샹탄함, 미사일 구축함 타이위안함 등으로 편대를 구성해 실사격 및 대잠수함 훈련에 들어갔다. 과테말라와 벨리즈 등 중미 수교국 순방에 나선 차이 총통이 중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매카시 의장과 만나면 중국군은 대만의 특정 군사 시설을 마비시키기 위한 전자전을 결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차이 총통의 방미는 대만 안보에 절대적인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런데 하필 이때 친중 성향의 마잉주 전 대만 총통이 중국 방문에 나서면서 차이 총통을 훼방하려는 ‘결투 방문(duelling visits)’이라는 눈총을 받고 있다. 다만 “이번 전·현직 두 총통의 미국·중국행의 이면에는 수많은 외교적 전략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의 색다른 해석도 있다. 마 전 총통의 의도와 무관하게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의 교류 확대를 강조한 그의 방중이 결과적으로 중국의 돌발 행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미중 패권 다툼에 낀 우리의 최우선 선택도 가치 동맹 강화일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정부의 외교적 조치에 대한 야당의 비판도 그 내용이 무엇이든 우리 안보에 유익한 결과를 낳아야할 것이다. 국익을 위한 외교적 전략도 없이 정치적 셈법에 기댄 ‘결투’에만 매몰되면 곤란하다.

<문성진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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