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폴 크루그먼 칼럼] 은행규제에 관한 잘못된 믿음

2023-03-29 (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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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두 개의 중형 은행을 구제하는데 몰두했다. 바로 실리콘 밸리 뱅크(SVB)와 시그니처 뱅크다.

정부가 그들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필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부인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SVB 주주들은 주식을 잃었다. 현재 법으로 정해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예금보험 한도액은 1인당 25만 달러이다. 따라서 모든 예금주들의 손실을 전액 보전해 주기로 한 연방준비제도(Fed)의 결정은 대형 예금주에 대한 대단한 특혜가 아닐 수 없다.

두 은행이 무너질 당시 채무상환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는지, 단지 대량예금인출사태에 대처할 준비된 현금이 없었을 뿐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설사 지불능력 상실로 손실이 발생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손실보전에 납세자들이 납부한 전통적인 의미의 세금이 사용되지는 않는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손실을 입은 예금주에게 보험을 지급한 후 필요할 경우 은행에 부과하는 수수료를 인상해 자금을 회수한다. 그러나 수수료는 은행을 이용하는 대중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사실상 납세자들에게 부담이 돌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두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은 나쁜 결정이었을까? 비판 의견은 기본적으로 네 갈래로 나뉜다. 그 중 하나는 우스꽝스럽고, 두 가지는 미심쩍지만 필자는 나머지 한 가지가 다소 우려스럽다.

먼저 턱없는 비난부터 살펴보자. 정치적 스펙트럼의 우측에 선 많은 사람들은 SVB가 사회적으로 각성된 은행이어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행동이 열차 탈선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다.

소용에 닿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SVB는 다양성이나 환경 등에 관심을 보이는 은행이 아니다. 은행이 사회적 책임이라는 상투어를 그들의 사명으로 내걸기 이전의 수세기 동안에도 금융기관의 파산은 늘 있었다. 이건 사회적 각성과 은행 파산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현대 미국 우파의 지적, 도덕적 파산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다 심각한 비판으로 넘어가자. SVB 도산은 지난 2008년 리먼 브라더스를 필두로 금융기관의 줄도산을 일으켰던 조직적 위협이 아니라는 합리적 주장에 필자는 대체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예금주는 왜 구제했을까?

한 가지 대답은 이렇다. 싫건 좋건 SVB는 이른바 테크놀로지 분야의 금융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예금주들이 일시적으로나마 그들의 자금에 접근할 수 없게 되면 숱한 기술업종 업체들의 임금지급과 청구서 납부가 불가능하게 되고, 장기적인 피해가 뒤따르게 된다. 암호화폐 산업을 죽이는 것은 공익을 위한 서비스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엉뚱한 피해가 나오지 않도록 옥석은 가려야 한다.

이런 면에서 SVB 구제금융은 2009년 제너럴 모터스와 크라이슬러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과 같은 맥락이다. 당시에도 구제금융을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을 보존해야 한다는 논리가 동원됐다. 물론 자동차사 구제는 납세자들에게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부담을 안겨주면서 여론의 신랄한 비난에 직면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올바른 조치였다.

세 번째 비판은 연준이 이제 사실상 모든 예금에 보험혜택을 제공한다는 원칙을 수립하면서 정작 은행이 예금을 이용해 벌이는 사업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보다 강력한 규제안을 마련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무책임한 위험부담(risk-taking)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셈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결정자들이 모든 예금 보호를 명시적으로 보장하진 않았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소형 은행에서 더욱 엄격한 규제를 받는 대형은행으로 자금이 흘러가고 있다. 독자들은 아마도 이것이 마땅치 않을 수도 있다. 대형 금융기관에 우호적인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모든 걸 고려하면 금융시스템은 분명 위험부담 축소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이제 필자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비판에 대해 살펴보자. 아마도 잘못된 주장일 수 있겠지만 은행도산이 인플레이션 통제 노력을 약화시킨다는 견해다.

은행파산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연준이 앞으로 어떤 정책을 펼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차기 연준 회의에서 금리인상은 기정사실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불분명하다. 시장은 이미 금리인하 가능성을 반영했고, (가까운 장래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연준의 정책을 시사하는 지표인) 2년 만기 국채 금리는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일부 예민한 금융전문가들은 연준이 인플레이션 안정보다 월스트리트를 보호하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SVB 사태에 대한 금융시스템의 반응으로 볼 때 최소한 일시적으로나마 연준이 금리인상을 제한할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연준은 경기냉각을 시도하고 있다. 은행의 증가된 위험 감수성과 보다 엄격히 규제되는 은행으로의 예금이동은 연준이 금리를 올리지 않더라도 경기를 냉각시킬 수 있다.

금융문제에 따른 낙진은 탁한 경제상황을 더욱 혼탁하게 만들었고, 정책입안자들이 올바른 결정을 한 것인지에 대해 우리가 확실히 알기 이전까지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다. 지금 필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흉흉한 금융 대재앙의 예언을 듣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보았듯 그 중 어느 하나도 정당화될 수 없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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