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히틀러와 무솔리니, 그 둘의 만남이 잦아졌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를 각각 이끌던 이 독재자들은 만날 때마다 공동 운명체임을 다져가면서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을 외쳐댔다. 그러다가….” 미국의 정치잡지 더 힐의 보도다.
40번째라고 하던가. 그 지난주의 시진핑과 푸틴의 만남을 이 잡지는 ‘가장 위협적인 세계 정치 리더들’의 회동으로 묘사하면서 2차 대전 대참화 직전의 상황을 환기시킨 것이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전범 혐의로 푸틴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지 불과 수 일 만에 시진핑은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그 자체가 그렇다. 한 마디로 서방주도 국제 사회의 법질서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다. 그러면서 푸틴과 함께 반미(反美) 전략 연대를 공고히 했다.
동시에 제시한 것이 12항의 우크라이나 평화 중재 안이다. 그 평화중재이라는 게 얼마나 중립적 입장이고 또 진정성이 있는 것일까. 서방의 관측은 상당히 회의적이다.
“스스로를 평화주의자인 양 부각시키면서 시진핑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윈-윈(win-win), 아니 더 나가 윈-읜-윈(win-win-win)상황으로 보고 있다.” 스펙테이터지의 분석이다.
어쩌다가 푸틴이 승리를 거머쥘 경우 이는 서방의 치욕이자 시진핑의 승리로 간주될 수 있다. 러시아가 계속 고전, 장기전 끝에 우크라이나가 승리해도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 모스크바의 베이징 의존이 심화되면서 ‘러시아의 중국 속국(屬國)화가 가속화 될 테니까.
세 번째로 평화중재 노력이 받아들여질 경우 시진핑의 중국은 진정한 글로벌 파워이자 서방의 대안세력으로 그 위상이 부쩍 높아지는 거다. 그러니….
그 계산에서인지. 시진핑은 유럽 지도자들을 베이징으로 초청하며 정상 외교를 이어가는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중국식 셈법으로, 미국과 서방은 시진핑의 모스크바 방문을 계기로 중국의 러시아에 대한 무기지원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말이 아니다. 중-러 공조에 대한 서방의 경각심만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이 러시아에 치명적 무기지원을 고려하고 있다는 정보를 동맹, 파트너와 공유하고 있다.” 토니 블린컨 국무장관의 최근 발언으로 중국이 러시아를 도울 경우 강력한 제재를 발동하겠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시진핑과 푸틴이 공조를 통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우크라이나전쟁의 장기화가 아닐까.
2년 째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푸틴의 입장은 상반된다. 전쟁을 멈추는 순간 우크라이나는 정치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 국가존립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 젤렌스키의 입장이다.
러시아가 싸움을 멈추면 전쟁은 끝난다. 그렇지만 푸틴의 계산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일부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서방과의 전쟁이라고 뻥쳐왔다. 그리고 결국 서방은 우크라이나 지원 피로증세에 빠져들면서 우크라이나 지원이 줄어들 것이란 확신과 함께 전쟁을 독려해왔다. 그 입장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는 것이 푸틴의 입장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전쟁을 계속 이끌고 가야만 하는 ‘보다 근본적인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 포린 어페어스지의 분석이다.
러시아 측의 전사자는 20만 명 수준에 접근했다. 경제는 망가지고 생활수준이 말이 아니다. 동시에 중국에 대한 의존도만 높아가고 있다. 한 마디로 국내외적으로 중차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도자, 특히 독재체제에서 전쟁에 대한 지도자의 인센티브(incentive)는 국민의 인센티브와 크게 엇갈린다. 푸틴은 러시아의 이해에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이해, 다시 말해 권력유지, 더나가 자신의 생물학적 생존을 위해 전쟁을 계속 이끌어 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시에 독재지도자가 권력을 상실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 정황에서 시진핑과 푸틴은 한 가지 부문에서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있다.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끄는 거다.
푸틴의 몰락은 단기적으로 중국에 결코 이로울 게 없다. 전쟁의 장기화는 중국에 해로울 게 없다. 앞서 지적대로 윈-읜-윈(win-win-win)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니까.
그러나 러시아가 가령 크림반도 함락이라든지 결정적 패배를 맞이할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1인 독재 체제에서 전쟁에 패배한 지도자는 처참한 최후를 맞는 그런 운명을 푸틴은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대대적인 군사지원을 함으로써 푸틴에게 결정적 패배를 안겨야 전쟁의 조기 종식이 가능하다’- 포린 어페어스가 내린 결론이다.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한국이 취할 입장이다.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은 한국의 적극적 군사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그 요청에 이제는 보다 전향적 입장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단적으로 핀란드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인구래야 550만에, 러시아에 눌려 외교주권도 상실한 처지에 있었다. 그 핀란드가 나토(NATO)에 가입한데다가 수 억 달러 상당의 살상무기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했다. 러시아를 격퇴하지 못하면 제 2의 우크라이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런 결단을 가져 온 것이다.
한국은 6.25라는 ‘사실상 러시아의 무력개입’ 피해를 입은 아픈 역사가 있다. 거기에다가 세계 10대 강국으로서 자유 민주주의 국제질서 형성에 적극 참여하는 안보외교노선을 채택했다. 이제는 전략적 모호성에서 탈피, 과감한 전략적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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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