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이는 임금’ ‘안 보이는 연금’

2023-03-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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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원 파업으로 인한 LA 통합교육구(LAUSD)의 휴교 걱정이 현실이 됐다. 지난 21일 이른 아침, 때마침 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 밴나이스의 스쿨 버스 계류장에서 시작된 피켓 시위는 이곳 저곳에서 23일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LAUSD 파업은 교육구내 일반 직원 노조(SEIU)가 주도하고, 교사 노조(LATA)가 지원하고 연대하는 식으로 벌어졌다. 교육구내 저임금 그룹인 버스 기사, 보조교사, 급식소 직원, 캠퍼스의 여러 일을 맡아 하고 있는 직원들이 파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연 평균 임금이 2만5,000달러 정도로 빈곤선 아래라며 30%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구 측은 지난 수 년간 20% 정도의 임금 인상이 이뤄진 데다 별도 보너스가 지급되기도 했다며 노조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번 파업의 쟁점은 아니지만 이와는 별개로 교사 노조와 교육구 간에는 20% 임금 인상이라는 이슈가 따로 있다. 또 다른 파업을 불러올 수 있는 불씨라고 할 수 있다.


교직은 고임금 직종이라고 하기 어렵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방학 때는 월급이 나오지 않는 곳도 있다. 그래서 인지 공립학교 파업 뉴스가 드물지 않다. 밖으로 드러난 임금 문제와는 달리 공립학교 시스템이 안고 있는 또 다른 이슈는 은퇴연금 제도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많지 않다. 교육의 질과도 연관돼 있어 점차 관심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교직원 은퇴 기금이 운용하는 자산을 모두 더하면 3조 달러 정도가 된다고 한다. 주식, 채권, 외환, 부동산 등에 투자해 운용하고 있다. 문제는 적립된 기금 보다 지출될 은퇴 연금 액수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지급해야 될 연금에 대비한 적립금 비율이 지난 2021년에는 84%, 지난해는 77%로 떨어졌다. 주가 폭락이 주요 원인으로 지금의 갭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9,000억달러 가까이 된다는 소식이다.

2년 전 각 주와 지방정부들이 교사 은퇴에 지출한 비용은 전체 K-12 공립학교 예산의 5.5%를 차지했다. 20년 전 1.3%였던 데 비하면 크게 늘었다. 매년 적자가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은퇴 기금을 운용하는 쪽에서는 교사들의 임금 인상분과 늘어나는 연금 수혜 자격자 숫자 등을 고려해 연금 계획을 짜고 있으나 지출이 수입을 웃도는 일이 계속되면서 20여년 전부터 기금의 적자 운영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들어온 신입 교직원들이 누릴 수 있는 은퇴 혜택이 더 좋아진 것도 아니다. 신임 교사에게 돌아갈 은퇴 혜택은 지금 보다 오히려 10만달러 정도 더 적어질 것이라고 한다. 기금의 투자 결과에 대한 예측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적자분이 학교 운영비 등 다른 교육예산으로 메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미국의 각 주 정부나 시 등 지방정부가 K-12공교육에 지출한 예산은 30% 남짓 늘어난 데 비해, 교직원 은퇴 연금으로 지출한 예산은 220%가 늘었다고 한다.

미시간 주 한 곳을 예로 든 웨인 스테이트 대학의 한 교육정책 전문가에 의하면, 이번 회계연도에 미시간 주의 공교육 지원 예산 가운데 30억달러 정도가 교직원 은퇴 연금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원래 대로면 학교 운영 등 교육현장에서 쓰일 예산이다. 연금 부담 때문에 교육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더 문제는 일괄적인 해결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주마다 교육 예산이나 교직원 은퇴 연금과 관련한 규정이 다 다르다.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 등 15개 주의 은퇴 교사는 연방 소셜 시큐리티 대신 자체 은퇴 플랜에 들어가 있다. 교육구나 학교 운영과 관련된 예산은 공개되어 있는 반면 은퇴 연금과 관련된 교육예산은 일반이 알기 어렵다며 투명성의 문제를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LAUSD 파업을 계기로 눈에 띄는 임금 문제도 있겠으나 더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 교직원 은퇴 연금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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