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폴 크루그먼 칼럼] 실리콘밸리 뱅크는 리먼이 아니다

2023-03-22 (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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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경제 옵저버들이 동의하는 것이 하나 있다. 2023년 미국 경제가 직면한 이슈는 2008년의 금융위기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 당시 우리는 은행의 줄도산 위기와 급락하는 수요에 대처해야 했다. 요즈음 금융 문제는 뒷전으로 처져있다. 모든 관심은 과수요로 공급이 달리면서 생긴 인플레이션에 집중되어있다.

물론 늘 그렇듯 과거의 어리석음이 조금씩 나타나기도 한다. 크립토 숭배집단의 등장이 좋은 예다. 암호화폐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침에는 공통된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한 금융기법에 끌리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단지 몇 주 만에 금융시스템이 무너져버린 2008년의 악몽이 이번에도 되풀이 되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느닷없이 우리의 눈앞에 익숙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정부의 법정관리로 넘어간 실리콘 밸리 뱅크(SVB)는 미국의 거대 은행 그룹에 속하지 않는다. 2008년에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리먼 브라더스 사태에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가 호되게 뒤통수를 맞은 사람들은 SVB의 대량예금인출사태를 지켜보며 섬뜩한 느낌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SVB는 리먼이 아니고, 2023년은 2008년이 아니다. 아마도 우리는 조직적인 금융위기를 보고 있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가 나서긴 했지만 납세자들은 손실부담을 원치 않는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감을 잡으려면 SVB가 도대체 어떤 집단이고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부터 이해해야한다.

SVB는 글로벌 혁신 경제를 이끄는 은행을 자처했다. 이런 슬로건을 보면 SVB가 대부분 투기적인 첨단기술에 투자하리라 생각하게 된다. 사실 SVB는 벤처캐피탈 자금이 넘쳐났기 때문에 스타트업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그리 많은 돈을 빌려주진 않았다. 대신 자금흐름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오히려 하이테크기업들이 SVB에 거액을 투자했다. SVB를 그들과 동류의 은행이라 여겼기 때문이라는 게 필자의 견해다.

SVB는 이렇게 모인 현찰을 미국 정부와 정부기관이 발행하는 장기채권 등 안전자산에 집어넣었다. 잠시 동안이지만 SVB는 이런 방식으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저금리 시대에는 장기채권이 은행 예금을 포함한 단기자산에 비해 더 높은 금리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SVB의 전략은 두 가지 거대한 위험에 종속되어있었다.

첫째, 단기금리가 오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단기금리는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탓에 추가로 떨어질 여지가 없다.) SVB가 이윤을 내기 위해 의존하는 가산금리는 사라질 것이고, 여기에 장기금리까지 오른다면 새로운 채권보다 낮은 금리를 제공하는 SVB 채권의 시장가치가 떨어지면서 자금손실이 생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연준이 금리를 인상한데서 발생한 일이다.

둘째, 은헹 예금의 가치는 연방차원에서 보험에 가입되어있지만, 보험이 커버하는 예금액은 최고 25만 달러까지다. 그런데 예금주들이 SVB의 예탁한 액수는 계좌당 수백만 달러에 달한다. 한 크립토 기업의 경우 SVB 투자액이 무려 33억 달러에 달한다. 이처럼 대형 예금주들이 사실상 연방보험의 손실보전 혜택을 못하기 때문에 SVB같은 중소형 은행은 대량예금인출사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 그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다음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설사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해도 SVB 사태가 거대한 경제적 파장을 몰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2008년에는 모든 자산군, 그 중에서도 특히 모기지 담보 채권이 초저가에 판매됐다. 그러나 SVB 자산은 지루할 정도로 단조롭기 때문에 2008년과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주된 피해는 기업들이 자금에 접근할 수 없어 영업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다. SVB의 파산이 다른 중간 사이즈 은행의 대량예금인출사태로 번지면 관련 업체들의 자금 유동성은 악화된다.

어쨌건, 예방차원에서 정부당국이 SVB 예금주의 예금 전액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은 이해할만하다.

여기서 눈 여겨 보아야할 대목은 정부의 조치가 주주들의 구제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SVB는 정부의 법정관리로 넘어갔고, 자기자본은 소진됐다. 정부의 조치는 많은 자금을 단일 은행에 투자하는 어리석음의 결과로부터 일부 기업들을 구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많은 테크놀로지 업체들이 정부의 구제를 필요로 하기 직전까지 ‘최소한의 정부’(minimal government)를 슬로건으로 내걸며 공적개입에 맹렬히 반대한 자유주의자였다는 사실 때문에 납세자들 사이에서 왜 그들을 도와야하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실, SVB를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여 은행규제 완화 결정을 이끌어내지만 않았어도 이번과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주석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당시 은행 규제완화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라엘 브레이너드다.

한 가지 희소식은 SVB사태로 인한 손실을 납세자들은 전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SVB가 실제로 완전한 채무불능상태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확실한 사실은 SVB가 예금주의 갑작스런 대량이탈에 대처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현금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단 상황이 안정되면 SVB 자산은 아마도 추가 자금의 유입 없이도 예금주에게 부채를 갚기에 충분할 만큼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시 정기적으로 예정된 위기 프로그래밍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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