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LAUSD 파업 속 워킹맘의 고찰

2023-03-22 (수) 석인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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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3일 동안 학교 안 가도 된대!”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힘차게 소리쳤다. 목소리만 들어도 아들이 얼마나 들떴는지 알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3일간의 방학이 주어졌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는지. 대조적으로 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3일간 학교에 가지 않는 6세 아들을 돌보며 일을 해야 하다니,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아들이 갑작스러운 방학을 맞이하게 된 이유는 LA 통합교육구(LAUSD) 노조(SEIU Local 99)가 파업을 진행하기 때문인데, 몇 달 동안 노조의 파업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는 LAUSD 측은 끝내 노조와 원만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로써 LAUSD 소속 1,000여개의 학교들은 노조 파업 기간인 21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휴교에 들어갔다. 미 전역에서 뉴욕에 이어 두번째로 큰 LAUSD 소속 학교들에는 약 50만여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인 것으로 나타나 큰 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학부모들과 파업에 대한 소식을 주고 받으며 새삼스럽게 놀란 건 대부분의 가정마다 아빠든 엄마든 최소 한 명씩은 재택근무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재택근무자를 보유한 가정의 경우 LAUSD의 3일간의 휴교에 불편함을 느끼긴 했지만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집에서 일하고 있는 덕분에 자녀의 돌봄을 책임질 누군가를 급하게 찾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 또한 마찬가지로 내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휴교 소식에도 비교적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LAUSD 소속 학교들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 중 엄마와 아빠 모두 출근을 해야 하는 맞벌이 가정 또한 수없이 많을 것이다. 재택근무자를 보유하지 않은 맞벌이 가정은 비상이다. 게다가 급하게 SOS를 칠 양가 부모님 마저 주변에 없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이 경우 친구, 이웃에게 염치를 불구하고 자녀를 맡길 수 밖에 없다.

워킹맘으로 살기 시작한 이후로 삶은 늘 살얼음판이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늘 죄송한 일이 발생하는 죄인일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수시로 아팠고, 내가 쓸 수 있는 휴가와 병가는 넉넉하지 않았다. 회사 일에 밀려 퇴근 시간이 늦어질 때면 유치원에 있는 아이 픽업시간에 늦을까 마음이 타들어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고 있음에도 언제나 타인의 도움과 배려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가 됐다.

현재 대한민국은 저출산 문제로 위기에 놓였다. 2018년부터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명대(0.98명)에 진입해 2022년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해 국가의 위기론까지 나오고 있다. 워킹맘으로서 대한민국 저출산 실태는 당연한 결과로 여겨진다. 출산의 주체인 여성은 엄마가 되는 동시에 사회적 약자로 전락하는데 그 누가 자진해서 고난의 길로 걸어 들어가고 싶을까.

독일은 저출산의 늪에서 빠져나온 대표적인 모범 사례 중 하나로 거론되는 국가다. 1995년 1.25명 역대 최저 출산율 기록한 이후 독일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을 전투적으로 투입했다. 아이를 낳으면 매월 약 200유로에 달하는 지원금 지급, 출산휴가 확대, 무상교육, 세금 공제 혜택 등의 저출산 정책을 시행했다. 게다가 많은 기업들에서는 부모가 일과 육아를 병립할 수 있도록 탄력근로제, 재택근무 제도 또한 적극 마련했다. 그 결과 2021년, 2022년 독일의 합계출산율은 1.6명, 1.4명으로 집계됐다.

자녀를 키우며 LAUSD 파업과 같은 변수는 도처에 깔려 있다.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출산 전후 여성의 근로 환경이 개선되는 동시에 여성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수월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기업과 사회 분위기가 변해야 한다. 육아를 하는 부모는 회사에 눈치 보지 않고 재택근무, 탄력근무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남녀가 공평하게 육아와 가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도 자리잡아야 한다. 워킹맘이 마음 졸이지 않고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갈 길은 멀지만, 방향성만은 확실하다.

<석인희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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