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산청의 봄’

2023-03-21 (화) 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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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응달에도 꽃이 피고 산청 무덤에도 꽃이 핀다 얼어붙었던 산청 개골창에도 꽃이 핀다 산기슭 한 뭉텅이가 풀썩, 무너져 내린다 송장 마다하는 땅이 어딨누 송장 마다하는 땅이 어딨어, 봄이 오면 또 산청 언덕에 새 무덤이 생겨난다 무덤 없는 산언덕은 볼품없는 언덕이다 축사에서 흘러내린 물이 고이고 또 고인 저수지, 눈이 뻘건 잉어는 아직도 살아서 입을 뻐끔거린다 논둑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 피우는 농부는 또다시 빈 논에 물을 잡고 있다(물을 잡다니? 여자도 아니고 택시도 아니고 물을!) 아직 울음이 익숙하지 못한 산청 개구리들 울음이 목구멍에 걸려, 울음이 목구멍에 걸려, 꾹꾹 첫울음을 울어보고 있다

‘산청의 봄’ 유홍준

봄볕이 겨울왕국의 얼음 문을 노크하면, 가장 연약한 것들이 달려 나온다. 방금 움튼 씨앗부터 묵은 알뿌리의 새순까지 나선다. 가까스로 나오는 게 아니라 힘차게 흙덩이를 들추고 나온다. 응달에도 무덤에도 개골창에도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나온다. 산청 개구리들은 와글와글 조만간 득음에 성공할 것이다. 얼음 천정이 열린 호수 위로 물고기들이 튀어오를 것이다. 반칠환 [시인]

<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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