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파식적]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2023-03-20 (월) 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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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재임 때 즐겨 사용했던 경구다. 그는 백악관의 책상 위에도 이 구절이 적힌 팻말을 두고 국정 운영의 원칙으로 삼았다. 이는 그가 원자폭탄 투하, 6·25 파병 등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는 고별사에서 “대통령이 하는 일 중 가장 큰 부분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며 다른 누구도 그를 대신해 결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격언은 20세기 초 미국 서부 지역 도박장에서 자주 열렸던 포커 게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게임 중 카드를 나눠주는 딜러 앞에는 벅 나이프(buck knife)라는 칼이 놓였다. 카드를 잘못 돌려 게임을 망치면 책임을 진다는 의미였다. ‘벅(buck)’은 수사슴·달러를 뜻했는데 여기서 ‘책임’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는 것이다. 책임을 떠넘긴다는 의미의 ‘패스 더 벅(pass the buck)’도 딜러 순서가 왔을 때 다음으로 넘기며 피하는 데서 시작됐다고 한다. 벅 나이프는 1902년부터 제조돼 유명해진 미국의 국민 칼 브랜드다. 칼부림을 각오할 정도로 책임이 강조된 만큼 트루먼의 각오가 새롭게 느껴진다.

트루먼의 경구가 적힌 팻말은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 위에도 놓여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한국 방문 때 선물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일제 강제징용 배상 해법을 내놓으며 “미래를 위한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이와 관련해 이 경구가 강조된 유튜브 쇼츠 영상까지 공개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결단이 성공할 수 있도록 일본의 호응 조치를 이끌어내는 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한 측근의 죽음과 관련해 “제 곁에 있었다는 이유로 당한 일이어서 저로서는 어떤 방식이든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더 이상 당을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덮는 ‘방탄’ 수단으로 활용하지 말고 지도자답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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