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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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od, The Bad, The Ugly’

2023-02-27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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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이었으니까 초대 워싱턴 대통령의 생일, ‘대통령의 날’이었다.

그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불쑥 나타났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시내를 걷는 바이든의 모습이 TV카메라 포착됐다. 연로한(80세) 미국 대통령이 개인적 위험을 무릅쓰고 미군이 주둔하지도 않고 있는 전쟁 지역을 전례 없이 방문한 것이다.

공습경보가 울리는 키이우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바이든의 모습은 과거 케네디와 레이건의 베를린 장벽에 선 광경, 중절모를 쓰고 시가를 문 채 승리의 V자 포즈를 취했던 처칠과 비교됐다.


‘치매환자,’ ‘현실감각이 결여된 늙은이’, 또 뭐가 있더라. 바이든에게 쏟아졌던 악플성 비난들이다. 그 뒷소리가 쑥 사라졌다. 대신 찬사가 터져 나왔다. 반세기동안 해외정책을 지켜본 워싱턴 인사이더로서의 그의 깊은 내공과 역량이 드러났다는 식의.

“레이건이 들어서자 미국의 존재를 사람들은 바로 깨달았다.” 바이든의 우크라이나와 뒤이은 폴란드 방문과 관련해 월 스트리트 저널의 페기 누난이 한 코멘트다. 모처럼 미국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바이든이 해냈다는 찬사다.

노구를 이끌고 20시간 가까운 잠행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바이든. 무엇을 말하나.

“선과 악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승자와 패자가 극명히 떠오르고 있다. 패자는 두 말할 것도 없이 푸틴이다. 승자는 젤렌스키이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서방이다. 중국은 비교하자면 ‘좋은 놈(The Good), 나쁜 놈(The Bad), 추한 놈(The Ugly)’ 중에서 ‘추한 놈’과 비교될 수 있지 않을까.”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이 지난 현재 내려지고 있는 대체적인 총평이다.

“정치적으로는 이미 우크라이나가 승리했다. 하루 800명의 전사자를 내고 있는 현재(2023년 2월 중순)의 전황으로 볼 때 러시아의 군사적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컨버세이션지의 진단이다.

“정작 주목해야 하는 것은 러시아가 어디를 향해 가는가이다.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러면 원심력이 작용, 붕괴됐던 것이 러시아의 역사다. 과거 노일전쟁(1905년)과 1차 세계대전(1917) 이후, 그리고 1991년 미국과의 냉전패배 이후 소련붕괴의 예에서 보듯이.” 나인틴포티파이브지의 전망이다.


경제력으로나 군사적으로나(핵전력을 빼고)애당초 B급 정도의 파워인 주제꼴을 파악 못하고 세계 초강 제국의 미몽에 사로잡혀 푸틴이 저지른 우매한 도전이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년 동안 전개되어온 우크라이나전쟁을 통해 중국이 면밀히 들여다 본 것은 미국의 약점이다. 이와 함께 살펴온 것은 러시아와 함께 2개 전선의 함정을 구축해 미국을 곤경에 빠트릴 수 있는지 그 가능성 타진이었다.

우크라이나 군의 용전분투, 미국과 서방의 단호한 대처, 그로인한 러시아의 잇단 패퇴로 그 야심찬 꿈(?)은 무산됐다. 그 부산물이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을 맞아 베이징이 내놓은 12 항목의 평화방안으로 보인다.

핵전쟁도 일방적 제재도 모두 반대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난했다. 중국은 평화의 편, 대화의 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서방 모두를 전략적 패배자로 만드는 양패구상(兩敗俱傷) 전략을 나름 구사했다. 그게 중국식 평화안이다.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지만 지는 편에 설 수도 없다. 그런 추한 중국의 속내가 드러났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서방은 물론,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도 그 제안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 1년이 지난 현재 그 최대 승자는 미국으로 보인다.” 적지 않은 관측통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그 단적인 예가 미국은 국방비의 5%만 사용해 러시아군을 멸절시키다 시피 했고 러시아의 평판을 땅에 떨어트렸다는 평가다. 단 한 명의 미군 전사자도 내지 않았다. 그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러시아는 물론, 중국도 약화시켰다는 것이 싱크 탱크 센터 포 그랜드 스트래터지의 평가다. 한 마디로 미국의 전략적 입지만 강화됐다는 거다. 개인적 위험을 무릅쓰고 감행된 바이든의 키이우 방문. 무엇을 말하고 있나. 여기서 앞서의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전시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더 나가 서방의 단호한 결전 의지를 알리는 동시에 승리선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엿보이는 것은 국제관계에서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바이든(혹은 바이든과 그 안보외교팀)의 리더로서의 탁월한 능력이다.

드라마틱한 우크라이나 방문으로 우크라이나 피로증세를 보이던 서방을 다시 하나로 만들었다. 국내적으로는 MAGA 공화당의 비난을 일거에 잠재웠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관련해 새삼 눈이 가는 것이 미국정부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포탄 수만 발의 구매요청을 한데 대해 한국정부가 고심하고 있다는 서울 발 보도다. 어느 면 이해는 된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외교안보정책이 아직도 새우근성을 벗어나지 못한데다가 전향적이고, 창의적인 외교능력 부족 탓이 아닐까.

위기를 기회로, 그 보다도 위기에서 오히려 기회를 창출해 내는 그런 리더십이 보고 싶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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