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상류사회 ‘젠트리’계급 남자를 지칭하던 ‘젠틀맨’은 어떤 사람을 가리킬까?
흔히 쓰는 ‘신사’는 고귀한 인물이라는 뜻의 일본어에 유래했다고 한다. 보다 한국적인 단어 ‘선비’는 학식과 절개가 있고 성품이 바르며 권력이나 재물을 욕심내지 않는 사람, 어원이 중국인 ‘군자’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품을 가진 자라는 뜻이 강하다. 현대 젠틀맨의 사전적 정의는 “상류층이며 지위와 재산이 있고, 지성과 교양이 풍부하고, 예절과 신의를 지키는 모범적 남성의 일반명칭”이라고 되어있다.
위의 정의대로면 젠틀맨이 되기는 참으로 어렵겠다, 현실적으로 가능하기나 할까? 나에게는 그보다는 ‘젠틀맨’이라는 단어 그대로의 뜻과 가까운, 프랑스의 귀족계층 ‘쟝띨옴므’의 “배려심이 있고 매너를 갖춘 남자”라는 정의가 더 쉽게 마음에 와닿는다.
얼마 전 한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열댓 명의 회원들이 모이자 신문사에서 온 기자가 모임을 취재하고 기사와 함께 실을 단체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모임에 별 기여가 없던 나는 뒷줄의 가장자리에 서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모임을 오래 동안 주도하여온 분이 큰 소리로, “여자 분들은 앞줄의자에 앉으시고, 남자들은 뒤에 서십시오!”라고 했다. 앞자리 중앙에 앉아 대표적 얼굴이 되어야할 그 분이 뒤에 서서 사진을 찍겠다니 뜻밖이었다. 주저되었지만 엉거주춤 앞자리에 앉았다.
“자, 웃으세요!” 찰칵. “한 장 더 찍겠습니다!” 찰칵.
기자분이 사진을 찍는 몇 초도 안 되는 순간동안 어쩐지 등이 따뜻하고 내 마음은 어린 시절, 늦가을 한길에 늘어선 버드나무의 긴 그림자도 어둠에 묻히는 시간, 시려오는 손을 비비며 집에 들어설 때로 돌아갔다. 장지문을 열면 따뜻한 아랫목에는 김이 오르는 밥과 반찬이 차려진 밥상이 있고. 내일 일을 의논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가 있고.
카메라셔터 소리처럼 그 느낌은 한 순간 반짝 왔다가 사라졌지만, 내 의식 어딘가에 여운으로 남았나 보았다. 며칠 후에 난 그날의 사진을 보자 왜 내게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사진은, 보통 남자들이 앞줄중앙에 앉고, 여자들은 뒷줄에 서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다른 단체사진들과는 달랐다. 사진 속에서 앞줄에 앉은 여자회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넉넉하고, 뒤에는 남자회원들이 철갑옷을 두른 전사 같이 서있었다. 어떤 위험이 닥쳐와도, 하늘이 무너져도 아틀라스처럼 짊어지겠다는 각오가 되어있는 듯 했다. 그 글 모임에서 이 년 전에 찍었던 사진도 꺼내보니, 그때도 여자들은 앞에 앉고 남자들은 뒤에 서있었다. 아마도 그분이 있는 사진이나 활동하는 현장의 곳곳에는, 언제나 듬직한 아틀라스님들이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여자가 보호를 필요로 하는가 않는가를 떠나서, 한 남자로서 연약해 보이는 다른 생명체를 위해 조건 없이 배려하는 마음, 즉 ‘젠틀맨쉽’을 발휘할 때, 한 인간으로서의 강인함도 더 확고해지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활짝 웃는 얼굴로 대하는 여유를 지닌 그분은 평생을 그런 정신으로 살아왔기에, 한국과 미국 양안에서 이룬 업적으로 건축계에서 높이 인정받았고, 우리 선조들이 고대에 꽃피웠던 요하문명을 세계에 알리는 책까지 내시지 않았을까 싶다.
아틀라스처럼 고단하게 삶이라는 하늘을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직위나 평안은 접어두고 보호하려는 대상을 인식하고 배려하여 “앉으십시오”라고 할 수 있는 저력을 간직한 남자야말로 젠틀맨, 쟝띨옴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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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휘원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