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폴 크루그먼 칼럼] 공화당의 사회안전망 흔들기

2023-02-22 (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크게 작게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연설 가운데 정치적으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일부 공화당의원들이 메디케어와 소셜시큐리티의 5년 일몰제를 원한다”는 선언이다. 그는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 아마도 릭 스캇 의원이 지난해 전국 공화당 상원위원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내놓은 재정 플랜 때문일 터이다. 그가 제시한 재정안의 주요 골자 중에는 모든 연방법의 효력을 5년으로 제한하는 일몰제 조항이 포함되었다.

“거짓말”이라는 공화당 의원들의 볼멘 항의와 야유가 터져 나왔지만 아무리 뜯어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바이든의 주장이 정치적 반향을 불러올 것임을 직감한 우익 언론은 즉각 이를 거짓으로 몰아세웠고, 일부 주류 언론인들조차 “바이든의 과장이 도를 넘었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필자가 보기엔 ‘일몰제 추진안’을 ‘일몰제 추진안’이라 부르는 것을 여론호도로 여기는 그릇된 생각이 이 같은 비난의 밑바탕에 깔려있다. 공화당과 보수진영은 유권자들이 ‘일몰제’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여론을 오도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한다. 사실 특정 프로그램을 승인하는 법의 시효가 끝난다고 프로그램 자체가 완전히 폐지되지는 않는다. 어느 경우건 의회는 투표를 통해 효력연장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공화당의원들이 실제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제거하고 싶어한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과거 40년간의 정치사에 무지한 탓이다. 공화당에게 미국의 주요 사회보험 프로그램에 대대적인 칼질을 가할 의도가 전혀 없다면 굳이 일몰제를 적용해 연장실패에 따른 폐기 위험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공화당의 의도를 엿보게 하는 역사적인 기록도 존재한다. 1980년대 이후 공화당은 두 가지 사안을 줄기차게 추구했다. 첫째, 공화당은 정치적으로 기회의 창문이 열려있다는 판단이 설 때마다 소셜시큐리티의 대규모 축소를 시도했다. 둘째, 공화당은 그같은 시도를 할 때마다 바로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행동을 반복했다. 자신들이 사용한 용어를 민주당이 그대로 차용해 소셜시큐리티 축소안에 먹물을 뿌리려 했다는 주장이다.

지금은 대부분 잊혔지만 로널드 레이건은 취임 직후 대대적인 소셜시큐리티 축소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치적 역풍이 거세지자 한 발 뒤로 물러섰고, 대신 카토 인스티튜트가 소셜시큐리티로 인한 재정위기가 닥칠 경우에 대비해 이른바 ‘레닌주의자’ 전략을 마련해야한다는 분석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같은 목적으로 카토는 소셜시큐리티를 개인계좌로 교체할 것을 요구하는 소셜시큐리티 민영화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5년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와중에 카토 연구소의 프로젝트 명칭이 슬그머니 바뀌었다. 여론조사에서 민영화 지지율이 저조하게 나오자 부시 대통령도 ‘민영화’라는 용어가 유권자들을 ‘겁먹게 만든 탓’으로 풀이했다.

메디케어도 이와 유사한 경로를 밟았다. 1995년 당시 하원의장이던 뉴트 깅리치가 연방정부를 폐쇄한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깅리치가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정부 폐쇄를 푸는 조건으로 의료보장제도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예산의 대폭 삭감에 동의할 것을 요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2010년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 후, 폴 라이언은 대규모 지출삭감을 추진했다. 그중 하나는 메디케어 환자의 의료비용을 정부가 직접 지불하는 시스템에서 수혜 대상자들에게 일정액을 지원해 민간보험을 구입하는 바우처 제도로 변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라이언 플랜의 지지자들 상당수는 바우처를 ‘바우처’라 부르는 것을 좌파의 흑색비방 선전으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바이든이 도를 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아예 모르는 건가? 지난 40년간 공화당이 메디케어와 소셜시큐리티를 축소하려 부단히 시도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나? 필자는 바이든이 국정연설을 통해 풀어놓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공격이 효과적일뿐 아리라 팩트 역시 그의 편에 서있음을 안다.


사회보험 프로그램과 관련한 민주당의의 공격에 유난히 취약한 공화당 정치인으로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힌다. 플로리다 주지사가 되기 전 디샌티스는 라이언의 메디케어 바우처 프로그램을 열렬히 지지했고, 근로자들의 60대 후반 은퇴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선언했다.

주지사로서 디샌티스는 교육과 공중보건 조치들에 대한 반대 등 문화전쟁으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가 거둔 최대 성과는 (사실 그걸 성과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바마의료개혁법 아래서 플로리다주의 메디케이드 확대를 막은 것이다. 그는 수십 억 달러에 달하는 연방 의료지원금을 거부했고, 결국 현실적으로 의료보험을 장만할 방법이 전혀 없는 수십만 명의 플로리다 주민들이 무보험자로 전락했다.

메디케이드는 메디케어나 소셜시큐리티와 달리 수입과 자산을 기준으로 수령대상이 결정된다. 그러나 메디케이드는 대단히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디샌티스의 조치는 원칙적으로 그가 사회 프로그램을 혐오하는 이념가임을 의미한다.

여기서 원래의 전제로 돌아가자. “일부 공화당의원들”이 핵심적인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빈껍데기로 만들려든다는 바이든의 발언은 옳다. 그리고 론 디샌티스는 바이든이 암시한 “일부 공화당 의원들” 가운데 한 명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