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를 울게 할’
2023-02-21 (화)
이규리
노인정에 모여 앉은 할머니들 뒤에서 보면
다 내 엄마 같다
무심한 곳에서 무심하게 놀다
무심하게 돌아갈,
어깨가 동그럼하고
낮게 내려앉은 등이 비슷하다
같이 모이니 생각이 같고
생각이 같으니 모습도 닮는 걸까
좋은 것도 으응,
싫은 것도 으응,
힘주는 일 없으니 힘 드는 일도 없다
비슷해져서 잘 굴러가는 사이
비슷해져서 상하지 않는 사이
앉은자리 그대로 올망졸망 무덤 같은
누우면 그대로 잠에 닿겠다
몸이 가벼워 거의 땅을 누르지도 않을,
어느 날 문득 그 앞에서 우리를 울게 할,
어깨가 동그럼한 어머니라는,
오, 나라는 무덤
저마다 한때 도도하고, 새침하고, 삐죽하고, 새초롬했을 것이다. 도도가 새침을 흉보고, 새침이 삐죽을 헐뜯고, 삐죽이 새초롬을 시샘했을 것이다. 낙석의 예각이 닳아 조약돌 되듯 뾰족한 마음은 모서리부터 부서져나갔을 것이다. 아픔의 격랑에서 얻어진 동그럼한 몸, 무심한 마음일 것이다. 날카로운 모서리로 불꽃을 튀기며 살던 딸이 고향집에 왔을 것이다. 댓돌에 신발이 없어 노인정을 찾았을 것이다. 엄마, 하고 부르면 일제히 돌아볼 것이다. 숫자대로 박카스 한 병씩 다 돌리고 나서야 겨우 자기 엄마를 찾았을 것이다.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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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