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 없이 세계 지도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기하게 생각할 부분이 있다. 남미와 아프리카 해안선의 모습이 갖다 붙이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이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다. 대륙이 움직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통념을 깨고 ‘대륙이 이동한다’는 학설을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 독일의 알프레드 베게너가 그 사람이다. 그는 1912년 두 해안을 조사한 결과 단지 모양이 일치할 뿐 아니라 암석의 구성도 유사하며 같은 동식물의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원래 두 대륙이 붙어 있었지만 서서히 떨어져 나왔다는 ‘대륙 이동설’을 주장했다. 그는 또 이 두 대륙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대륙이 한 때는 한 데 붙어 ‘원대륙’을 구성하고 있었고 대서양 한 가운데 남미와 아프리카를 갈라 놓는 ‘대서양 중앙 능선’(Mid- Atlantic Ridge) 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원래 지질학자가 아니라 기상학자 출신이고 대륙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힘의 메커니즘이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베게너는 주위의 조롱 속에 1930년 그린랜드 탐험을 갔다 조난당해 죽었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의 생각이 옳았다는 증거가 속속 나왔다. 1950년대에는 그의 주장대로 인도가 한 때는 남반구에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됐고 1960년대에는 대서양 한 가운데 지구 전체를 한바퀴 휘도는 중앙 능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대륙이 이동할 수 있는지 그 힘의 원천이 밝혀졌다. ‘판 구조론’(plate tectonics)에 따르면 지구 표면은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 판으로 이뤄져 있고 이들은 암석이 약간 녹은 상태로 존재하는 ‘연약권’(asthenosphere)의 바다에 떠 있다. 지구 내부의 열로 인해 그 밑의 맨틀과 함께 대류 작용이 일어나면서 물을 끓이면 밑에 있던 물이 위로 올라와 표면에서 양쪽으로 퍼져 나가듯 지구의 판들도 움직이는 것이다.
이 이론이 맞다면 지구에서 가장 젊은 암석은 대서양 한 가운데서 발견돼야 한다. 지구 깊숙한 곳에서 솟아 오른 용암이 땅위로 올라와 해양판이 생겨나는 곳이 거기기 때문이다. 이 또한 사실로 입증됐다. 이렇게 탄생한 해양판은 1년에 2.5cm 정도의 속도로 남미와 아프리카 대륙판을 멀어지게 하며 세월이 지나면 대서양은 태평양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가 된다.
이렇게 밀린 대륙판은 태평양 해안판과 충돌, 해안판은 대륙판 밑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 때 지진과 화산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된다. 태평양 일대가 ‘불의 고리’로 불리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대륙의 이동은 어째서 바다 한 가운데 화산 섬이 일렬로 나란히 늘어서 있는 지도 설명해 준다. 1963년 캐나다의 지질학자 존 윌슨은 맨틀에는 용암이 뿜어져 나오는 고정 핫 스팟이 있으며 그 위를 해양판이 이동하면서 일정 간격으로 화산섬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와이나 갈라파고스 제도가 일렬종대로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 때 조롱의 대상이던 ‘대륙 이동설’은 이제는 정설로 자리잡았고 이제 과학자들은 대륙 이동을 가능케 하는 대류의 원인 규명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로는 맨틀 아래 있는 지구 핵에 존재하는 방사성 물질의 붕괴가 지열의 근본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방사성 물질이 에너지를 방출하는 방식은 세가지가 있다. 스스로 방사선을 방출하는 핵 붕괴와 핵이 쪼개지는 핵 분열, 그리고 합쳐지는 핵 융합인데 핵 분열은 원자폭탄, 핵 융합은 수소폭탄과 별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고 핵 붕괴는 지구 내부에서 발생한다. 이 에너지가 녹은 철의 형태로 존재하는 지구 외핵과 서서히 움직이는 고체 상태의 실리콘인 맨틀 대류 현상의 근본 원인인 것이다.
지구가 남극과 북극으로 이어지는 자기장에 뒤덮여 있는 것은 철로 이루어진 외핵의 회전 때문이고 지진이 발생하는 것은 맨틀의 회전 때문이다. 자기장은 한시도 쉬지 않고 지구를 강타하는 소립자의 바람인 태양풍으로부터 지구의 대기와 생명을 지켜주지만 지진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다.
이달 초 튀르키예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4만이 넘었다. 여러 판들이 충돌하는 이곳에서의 지진은 필연이고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것은 지진이 아니라 건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런 곳에 살려면 강진에 견딜 수 있는 건물을 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참사가 지진 다발 지역의 내진 설계 강화의 필요성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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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