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티스는 플라톤의 저작 ‘티마이오스’와 ‘크리티아스’에 언급된 전설상의 섬이자 그 섬에 있던 국가다. 강대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아테네를 제외한 대부분의 세계를 정복했다고 묘사돼 있다.
이 전설의 아틀란티스가 요즘 들어 새삼 소환되고 있다. ‘뉴 아틀란티스(New Atlantis)'란 신조어와 함께. 앞으로의, 그러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이후의 세계는 ‘뉴 아틀란티스’와 ‘거대 중국제국(Great Middle Kingdom)간의 지정학적 각축장이 된다는 식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나. 단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만 볼 수 없다. 유럽에 대한 침공이고 더 나가 전 서방문명에 대한 침공이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가 일찍이 내린 결론이다.
유럽 땅에서 벌어진 2차 대전이후 최대 전쟁. 그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은 이루 형용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일말의 서광이 비쳐지고 있다. 계속되는 분석이다.
작용은 반작용을 불러온다고 하던가. 워키즘(Wokeism), 평화주의, 고립주의 등 이데올로기의 범람과 함께 깊은 나르시즘에 빠져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서방을 일깨우면서 불굴의 인내, 충의, 용기 등 덕목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게 했다.
꺾이지 않는 용기와 의지로 러시아군에 저항해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그 모습이 서방세계에 감동으로 전해지면서 이는 자유주의 내셔널리즘의 부활로 이어졌다.
동시에 부활한 것은 자유주의 인터내셔널리즘이다. 과거 소련과의 냉전초기 트루먼 대통령의 역할을 바이든이 맡으면서 미국은 ‘민주주의의 병기창’으로 다시 떠오른 것. 이는 보수주의 인터내셔널리즘의 부활이기도 하다는 것이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지적이다.
바이든의 400억 달러 우크라이나 지원 안에 연방하원은 368 대 57, 상원은 86 대 11의 압도적 표차로 가결시켰다. 미국의 이 같은 초당적 움직임은 나토회원국은 물론, 전 서방진영의 유례없는 단합을 불러오면서 우크라이나에서 기적을 연출했다. 전력에서 절대 열세였던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에 막대한 타격을 입히면서 전세를 뒤집었다.
역사는 결국 정의의 편이다. 그런 낙관론에 들떠 있었다고 할까. 그것이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의 분위기였다. 이와 함께 ‘뉴 아틸란티스’의 이상적 그림도 떠올려진 것이다.
여기서 뉴 아틀란티스는 대서양을 가운데 둔 미국과 유럽, 더 나가 인도태평양지역의 민주주의 국가들의 거대 동맹체 혹은 강력한 연대를 말한다. 거대 중국제국은 공산체제의 탈을 쓴 중국제국과 러시아가 한 축이 된 권위주의 대륙세력을 말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결국 러시아의 패배로 끝나지만 여전히 제국주의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러시아와 팽창주의의 원조격인 중국이 한 축을 이룬 권위주의 대륙세력과 자유민주주의 해양세력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후 세계는 양분된다는 거다.
과히 틀리지 않은 지적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이 지나면서 새삼 확인되고 있는 것은 푸틴과 그 일당의 마인드세트는 소련제국시절의 프레임과 내러티브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다. 동방 대 서방, 우리 대 그들, 이런 식의 지정학적 개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포린 어페어스지의 진단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사고의 연장에서 푸틴이 저지른 ‘또 하나의 한국전쟁’으로 볼 수 있다는 거다.
그 푸틴이 계속 파워를 휘두를 수 있게 되면 우크라이나에 이어 발트 3국, 벨라루스 몰도바, 조지아, 카자크스탄 등 과거 소련제국에서 독립해 나간 주변 국가들을 대상으로 침공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게 뒤따르는 전망이다.
푸틴의 채워지지 않는 영토 확장 야심의 영감(?)은 어디서 비롯됐나. 워싱턴타임스는 동북공정이니, 어쩌니 역사날조를 통해 무력침공을 거듭해온 중국을 지적하고 있다.
서남공정, 그러니까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라는 역사조작과 함께 1950년 10월 중국 인민해방군은 티베트를 침공, 점령했다. 이후 철저한 문화말살정책을 펴면서 티베트 사원의 95%를 조직적으로 파괴했다. 그 문화, 인종청소를 되풀이하고 있는 곳이 신장 위구르자치구역이고, 내몽골자치구다.
이 권위주의 대륙세력의 침공에 놀라 서방은 하나가 됐다. ‘뉴 아틀란티스’의 이상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2년 차에 접어들면서 그 이상은 다소 퇴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피로증세가 확산되면서인지.
그 단적인 예의 하나는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나든 알 게 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는 미국인들이 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다. 공화당 유권자 중 53%가 그 같은 입장인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10만이 넘는 전사자를 내고도 푸틴은 새로 50만을 동원해 대대적 공세에 들어갔다. 전폭기에서 전차에 이르기까지 온갖 중화기를 이끌고. 그 모양새라니, 뉘우침은 없고 지난해의 수모를 갚겠다는 독기만 느껴진다.
이 춘계대공세는 어떤 결말로 이어질까. 결코 낙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전쟁피로증세에 감염이 됐는지 나토 회원국들의 주력전차 지원조차 하나 둘 공수표가 되어가고 있어서다.
그건 그렇고, ‘뉴 아틀란티스 대 거대 중국제국’- 그 양자 대결진영에서 한국의 좌표는 어떻게 설정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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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