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30만 단독·다가구 ‘깜깜이 관리비’…세입자가 집주인보다 10배 이상 낸다

2023-02-07 (화) 12:00:00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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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비 사각지대’ 비아파트

▶ 오피스텔까지 상당수 내역 비공개…관리비에 임대료 전가행위 빈번

# 공공기관 전세임대 물건을 찾던 A 씨는 몇 달 만에 간신히 공공기관 전세임대 계약 이력이 있는 주택을 찾았지만 임대인은 자산을 공개해야 하고 서류 제출 등 과정이 복잡하다며 계약을 거절했다. A 씨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발 계약만 해달라’고 사정하자 임대인은 “관리비를 15만원 더 내라”고 제안했다. A 씨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관리비로 ‘위장’한 임대료를 매달 임대인 통장으로 보내는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전국적으로 약 430만 가구의 단독·다가구주택 등이 관리비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민간임대주택법 등에 관리비 관련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실제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 임대료가 관리비에 전가돼 청구되는 일이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단독·다가구주택의 경우 세입자가 부담하는 관리비가 집주인의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6일 국토연구원에서 발행한 ‘깜깜이 관리비 부과 실태와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20.5%에 해당하는 429만 6000가구가 제도가 미비해 근거가 불명확한 관리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민간 주택 관리비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법률은 △공동주택관리법 △집합건물법 △민간임대주택법 등 세 가지가 있지만 공동주택(아파트)과 집합건물에 초점을 맞춘 관리비를 다루고 주택 소유권자를 전제로 관리·감독 시스템을 만든 탓에 사실상 비아파트에 거주하는 임차인이 내는 관리비에 대한 법률은 없는 상태다.


보고서는 단독·다가구·다세대는 물론 주택의 대안적 형태인 오피스텔이나 도시형생활주택도 관리비 산정과 청구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제도상 공백’을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윤성진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상당한 가구가 관리비 내역 미공개, 임대료의 관리비 전가 위협으로부터 적절한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관리비에 대한 임차인 불편 사항을 접수한 민달팽이유니온에 따르면 임차인이 관리비 내역을 요구하는 일이 일반적이지 않아 법이 있어도 투명한 관리비 산정과 부과 및 징수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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