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 교훈을 주고 있나. 2022년 2월 25일이었나.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단행한 날이. 이후 줄곧 던져져온 질문이다.
관련해 존스 홉킨스 대학의 할 브랜즈는 한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미국이란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우크라이나는 진작 러시아군에 짓밟혔고 투옥에, 고문에, 처형의 광란극이 그 땅에서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그가 내린 결론이다.
그가 이 가설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다름이 아니다. 포스트-아메리카의 세계는 정글의 법칙만 존재하는 살벌한 세계가 된다는 거다. 다른 말로 하면 미국은 여전히 유일한 수퍼 파워라는 교훈을 우크라이나 전쟁은 일깨워 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란 세계 유일의 수퍼 파워를 축으로 유럽의 정치기상도가 구조적으로 바뀌고 있다’-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드러나고 있는 또 다른 두드러진 흐름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말이 어떻게 이어지든 러시아는 유럽에서 완전 퇴출될 것이다. 러시아가 승리하거나 한국전쟁 종전 식으로 전쟁이 끝나면 새로운 철의 장막이 쳐질 것이다. 러시아가 패배할 경우 뒤 따르는 것은 대혼란으로 자칫 러시아연방의 해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관측이다.
전쟁이 어느 방향으로 종식되든 유럽의 정치지도는 대변화를 맞이한다는 것이 이어지는 전망이다. 발트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지역이 유럽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한다는 게 그 예상이다.
그 조짐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함께 이미 드러나기 시작했다. 말 따로 행동 따로 라고 할까.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해 독일, 프랑스가 보여 온 그동안의 행태는. 우크라이나에 주력전차를 지원하는 문제도 그랬다. 망설이고, 토를 달고, 시간만 끌고. 그러다가 미국을 끌어들여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레오파르트2’ 지원을 결정했다. 그것도 고작 14대를.
반면 폴란드를 비롯해 핀란드 등 ‘발트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지역 국가들’은 전쟁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에 나섰다.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가깝다. 때문에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보복으로 러시아로부터 직접적인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난민수용에서 전차 등 무기지원에 이르기까지 우크라이나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자체 국방비도 대폭 증강했다.
이를 통해 높아진 것은 이들 국가들의 도덕적 권위다.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은 서구의 종주국 격인 독일, 프랑스의 리더십이다. 이와 함께 유럽의 전략적 무게의 중심이 독일과 프랑스를 축으로 한 서유럽 에서 중부, 동부유럽, 다시 말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부전선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것.
발트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열린 최근의 유럽 국가들의 모임이 이를 상징하고 있다. 그 날은 2023년 1월 19일이다. 폴란드를 비롯한 중부유럽 국가들, 발트 해 3국, 영국, 거기에다가 네덜란드와 덴마크까지 참가해 우크라이나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이 모임은 이보다 3일 뒤 프랑스와 독일이 유럽통합 60주년을 맞아 두 나라가 통합의 주역임을 홀로 자축한 것과 대비가 되면서 수치감마저 안긴 것이다.
왜 이들 동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그토록 적극적이고, 또 다투어 미국과의 동맹관계 강화에 열심일까. 공산당통치의 잔인성, 그리고 러시아제국주의의 야만성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러니까 동병상련 처지에서 우크라이나의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할까.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유럽의 정치기상도 변화. 이와 함께 새삼 소환되고 있는 지정학적 용어가 있다. 인테르마리움(Intermarium)이다.
바다에서 바다란 뜻으로 여기에서 바다란 발트해와 흑해를 뜻한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몰락한 뒤 폴란드에서 여러 차례 제안되었던 지정학적 기획이 인테르마리움으로 이 두 바다 사이의 여러 약소민족들이 하나의 연방체제로 대동단결하여 서쪽의 독일과 동쪽의 러시아라는 패권국가의 약탈적 팽창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자는 구상이다.
그 후보로 거론 된 국가들은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헝가리,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등이다. 이 나라들은 핀란드를 제외하고 거의 모두 소련이나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하는 슬픈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그 ‘인테르마리움의 염원’이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다른 형태로 구체화 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유일의 수퍼 파워 미국을 축으로 한 보다 강력한 집단 동맹체제 구축으로.
여기서 결코 우연이 아닌, 섭리랄까 하는 하나의 역사의 흐름이 포착되는 느낌이다.
폴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라트비아, 루마니아…. 발트해에서 흑해, 바다와 바다 사이의 이 나라들에 ‘K2 블랙 팬더(흑표)’전차에, K9 자주포 등 각종 K방산이 엄청난 속도로 유입되고 있다. 포린 폴리시지는 한국의 주력전차인 ‘흑표’의 경우 머지않아 독일의 ‘레오파르트2’를 제치고 나토시장을 석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을 정도다.
주변 패권국가의 침공에 항상 시달려왔다. 그 한국이 말 그대로 ‘민주주의의 병기창’이 되어 같은 슬픈 역사를 가진 인테르마리움의 국가들의 안보강화에 기여하고 있어 하는 말이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면 러시아의 대공세를 앞두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한국도 직접적인 무기지원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6.25의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제는 ‘전략적 모호성’을 벗어나 민주적 가치에 충실한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그러니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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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