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시골집에는 대문이 있어도 집 뒤쪽이나 중간 담 모퉁이에 작은 쪽문이 있는 집들이 많았다. 이 샛문은 대소가 친척들을 방문할 때 꼬부랑 고샅을 돌고 돌아 출입하기보다는 지름길 역할을 하였고, 또한 밤 이슥할 때 누나들이나 어머니가 동네 마실을 가거나 화투놀이 방에 갈 때, 그러니까 어른들 몰래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옛날 어른들은 아마 이를 알면서도 눈감아주었을 것이다. 이것은 마음의 여유이고 아량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어릴 때의 일이다. 황금물결의 가을 들녘은 추수가 끝나자 삭막하였지만, 넓은 마당은 다니기도 어려울 만큼 나락 낟가리 뭉치들로 가득했었다. 하늘 높이 쌓아놓은 낟가리들은 어린 우리들이 보기에도 흐뭇했고, 우리는 그 속에서 신나게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늦가을 어느 날, 타작을 하여 나락을 마당에 쌓아놓고 가마니로 덮어놓았다. 다음날 아침 어수선한 소리에 나가보았더니 때까우(거위) 한 마리가 목이 잘린 채 대문 앞에 죽어있었다. 원래 암놈은 목소리가 크고 맑아 소리를 쳐서 엄포를 놓거나 주인에게 구호 요청을 하고, 수놈은 허스키 목소리를 꽥꽥 소리를 지르며 목을 길게 빼고 날개를 치면서 덤벼들어 물어뜯는 고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웬만한 개보다도 사나워 집 지키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런데 웬일일까? 그날 밤 도둑이 든 것이었다.
그날 밤은 초겨울 날씨로 바람이 심하게 불고 몹시 추웠다. 싸락눈이 내려 발자국이 눈 위에 선연하게 나타나있었다. 화가 난 할아버지가 집안 머슴을 데리고 발자국을 추적했다. 나도 뒤를 따라 강아지 마냥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 발자국은 고샅을 지나 맨 꼭대기 오두막집으로 이어져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되돌아서 발자국을 지우며 오시는 것이었다.
평소 할아버지는 호랑이같이 무섭고 급한 성격이라 당장 문을 차고 들어가 도둑의 목덜미를 잡고 끌어내어 눈밭에 팽개치거나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멍석말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뒷짐을 지고 돌아오시며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이런 짓을 했을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어린 소견이지만 여름 내내 불볕더위 속에서 땀 흘리며 농사지어 탈곡해놓은 나락을 훔쳐간 도둑을 당장 요절이라도 냈어야 평소 할아버지의 위엄이 설 것 같았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할아버지의 깊은 뜻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그것이 마음의 여유이고 지혜라는 것을. 훗날 그때 나락을 훔쳐갔던 사람은 그날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바로 와서 용서를 구했다. 그리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평생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하며 어떤 궂은일도 마다 않고 해냈다.
할아버지께서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세상일은 꼭 생각같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치나 원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단다. 남의 사소한 실수 같은 것을 덮어주지 못하고 너무 몰아세우지 마라. 사람을 비난할 때도 상대방이 변명할 수 없도록 무조건 공격하는 것은 좋지 않아. 상대방이 달아날 구멍을 조금 남겨놓아야 한다”고. 우리 일상생활에도 이런 동네 마을의 샛문과 같은 소통 길이 있어야한다는 말씀이었다. 마치 동양화에서 여백을 남기듯이. 알다시피 동양화에서의 여백은 무한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 여백은 보는 이의 몫으로 구름, 새, 꽃, 나아가서 보이지 않는 바람까지도 그려 넣을 수 있는 여유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을 살며너무 똑 부러지게 FM대로보다는좀 여유를 갖고 살자. 아내가 출근길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와 미처 못 채운 와이셔츠 단추도 채워 줄 수 있도록 빈틈을 남겨 놓는 것…그 또한 여유가 아닐까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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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상 소설가>